[top100] EPL 역대 최고 외국인 1-10위

기사작성 : 2017-02-16 12:11

+ 프리미어리그를 빛냈던 외국인 스타플레이어들
+ 역대 최고 외국인 선수 100인을 뽑았다
+ 영광의 10인을 소개한다

본문


[포포투]

1992년 프리미어리그가 출범했다. 지금까지 이곳에서 활약한 선수의 국적은 무려 105개국에 달한다.

월드 No.1 풋볼매거진 <포포투>가 프리미어리그 역대 최고 외국인 100인을 모았다. 100위 박지성부터 시작해 이제 대망의 톱1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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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다비드 지놀라 (프랑스)

뉴캐슬의 옛 룸메이트 워른 바턴은 처음 팀에 합류한 지놀라를 보며 레스 퍼디낸드에게 “젠장, 단체촬영할 때 저 녀석 옆에 서면 절대 안 되겠어”라고 말했다. 조각 같은 외모, 아름다운 머릿결은 ‘싸나이’ 세상이었던 영국 축구계에서 대단히 튀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샴푸 광고 모델로 발탁되었을 정도이니 문자 그대로 ‘센세이셔널’이었다.



플레이는 파괴적이었다. 개리 네빌(맨유), 커티스 플레밍(미들즈브러), 리차드 엣지힐(맨시티) 등이 지놀라 앞에서 차례대로 무너졌다. 1999년 토트넘 소속으로 터트렸던 반즐리전 솔로골이 대표적이었다. 왼측면에서 드리블하기 시작한 지놀라는 수비수 네 명을 제치고 골을 성공시켰다. 혼자 힘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특급 기량이 발휘된 대표적 장면이었다. 1995년부터 2002년까지 뉴캐슬, 토트넘, 애스턴 빌라, 에버턴에서 활약한 뒤 현역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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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피터 슈마이켈 (덴마크)

골키퍼로서 활약만큼 동료들을 동기부여할 줄 아는 리더였다. 경기 내내 자기 앞에 있는 동료 수비수들에게 고함을 질러대며 조직을 유지시켰다. 날아드는 슈팅은 놀라운 순발력과 뛰어난 위치선정으로 막아내는 든든함의 표상이기도 했다. 발기술도 뛰어난데다 경기 흐름을 읽는 눈도 정확했다.



하이라이트는 1998-99시즌 FA컵 준결승 재경기였다. 경기 막판 허용한 페널티킥을 슈마이켈이 기적처럼 막아냈고, 라이언 긱스가 그 유명한 골을 터트려 맨유는 결승전에 진출할 수 있었다. 맨유에서 8년간 주전 골키퍼로 393경기에 출전했고, 스포르팅 CP를 거쳐 애스턴 빌라와 맨체스터 시티에서 각각 1년씩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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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파트리크 비에이라 (프랑스)

1996년 여름 이적료 350만 파운드로 아스널에 입단했다. 비에이라는 “아르센 벵거가 감독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아스널을 선택했다”라고 밝혔다. 긴 다리와 강력한 힘 위에 테크닉을 겸비해 중원에서 적수가 없었다. 경기장 밖에서는 유순한 성격이어도 그라운드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야수로 변하는 기질로 이적 첫 시즌부터 새로워진 아스널의 주전으로 맹활약했다.



1998년 월드컵 휴가 직후 선수단에 복귀해 팀 훈련 한 번 없이 투입된 1998년 커뮤니티실즈에서 경기를 지배하며 맨유를 3-0으로 눌러버렸다. 로이 킨, 야프 스탐과 으르렁대면서 자존심 싸움에서도 결코 물러섬이 없어 아스널 팬들로부터 절대 지지를 받았다. 현역을 마무리한 맨시티의 핵심 간부로 성장해 지금 미국 프랜차이즈인 뉴욕시티FC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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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잔프랑코 졸라 (이탈리아)

디에고 마라도나와 함께 나폴리에서 세리에A 우승을 거뒀다. 1996년 파르마에서 절정기를 달리고 있을 때 첼시가 그를 영입하자 프리미어리그 팬들은 깜짝 놀랐다. 졸라의 테크닉은 차원이 달랐다. 적응기도 필요없다는 듯이 첼시 유니폼으로 갈아입자마자 환상적인 개인기를 펼치며 동료와 팬 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모든 능력을 타고난 것처럼 보였지만 노력도 대단했다. 졸라는 항상 남보다 일찍 팀 훈련에 도착해 짐(gym)에서 개인 운동을 거르지 않았다. 동료들과 어울리기 위해 골프를 쳤고, 모두에게 친절했다. 첼시에서 7시즌을 뛰며 80골을 터트렸다. 2005년 현역에서 은퇴했고, 3년 뒤 웨스트햄 감독으로 복귀했다. 현재 버밍엄 시티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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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세르히오 아구에로 (아르헨티나)

2011년 여름 이적료 3,800만 파운드 몸값으로 맨체스터 시티에 합류했다. 스완지전 59분에 교체 투입되었는데, 2골 1도움으로 4-0 대승을 이끌며 클래스를 입증했다. 페널티박스 안에서는 아구에로를 막을 만한 수비력이 프리미어리그에는 없어 보였다. 첫 시즌에만 리그 34경기 23골, 시즌 48경기 30골을 기록하며 몸값을 입증했다.



데뷔 시즌 마지막 골은 맨시티의 역사로 자리 잡았다. 후반전 추가시간 아구에로의 역전골 덕분에 맨시티는 라이벌 맨유를 시즌 종료 1분 전에 따돌리고 감격스러운 우승을 차지했다. 현재 맨시티의 클럽하우스 벽면에는 아구에로의 당시 득점시간이 새겨져 있을 정도다. 지금까지 맨시티에서 235경기 154골로 경기당 0.65골을 기록 중이다. 현존 프리미어리그 절대 지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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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디디에 드로그바 (코트디부아르)

2004년 여름 조제 모리뉴와 함께 스탬퍼드 브리지에 입성했다. 이적료는 2,400만 파운드. 시즌 도중 복근 부상으로 고생해 리그 26경기 10골로 평범하게 데뷔했다. 시즌이 거듭되면서 드로그바는 구단 안팎에서 존재감을 키워갔다. 2006-07시즌 리그 20골로 득점왕을 차지했지만 팀은 세 시즌 만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밀려 2위에 그쳐 운이 엇갈렸다. 2년 뒤, 드로그바는 리그에서만 29골을 터트려 두 번째 득점왕을 차지했다. 첼시 통산 개인 기록은 341경기 157골.

무엇보다 그의 장점은 ‘신뢰’였다. 해결사가 필요한 빅매치마다 드로그바는 제 역할을 100% 해냈다. FA컵을 네 차례 우승했는데, 결승전에서 모두 골을 넣었다. 2012년 UEFA챔피언스리그에서도 막판 헤딩 동점골로 패배 일보 직전에서 팀을 구해냈다. 빅매치에 강한 선수가 따로 있다고는 해도 드로그바만큼 확실한 결과를 남기는 골잡이는 드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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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데니스 베르캄프 (네덜란드)

1995년 여름 750만 파운드로 인테르나치오날레에서 아스널로 이적했다. 악몽 같았던 밀란의 2년에도 불구하고 그의 기량은 팀 동료들에게 자괴감을 들게 했다. 베르캄프의 진가는 1년 뒤 성사된 아르센 벵거의 감독 부임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따분했던 아스널이 아름다운 공격 축구로 변모했고, 그 중심에는 단연 베르캄프의 톱클래스 플레이메이커가 있었다. 1997-98시즌에는 직접 22골이나 넣으며 벵거의 첫 시즌 더블을 도왔다.



물리학을 거부하는 듯한 볼터치로 베르캄프는 인상적인 골 장면을 만들었다. 2002년 뉴캐슬전에서 나온 득점이 백미였다. 상상력과 볼터치, 신체 밸런스가 접목되었던 골은 1998년 프랑스월드컵 아르헨티나전에서 선보였던 터치 후 득점과 함께 지금도 많은 팬의 추앙을 받는다. 2005-06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한 베르캄프는 아스널은 물론 영국 축구계를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스널 423경기 120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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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에릭 칸토나 (프랑스)

왕(King). 영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영입. 짧고 굵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5시즌 동안 칸토나는 그렇게 기억된다. 1991년 리버풀이 거부(팀 화합을 깨트린다는 이유)한 칸토나는 리즈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 첫 시즌 리즈와 함께 풋볼리그 1부 우승을 경험하며 나쁘지 않은 출발을 끊었다. 독립 출범한 프리미어리그 원년 시즌이 막 진행되던 1992년 11월, 리즈는 120만 파운드에 칸토나를 알렉스 퍼거슨에게 선뜻 내줬다. 그곳에서 보낸 5시즌 중 칸토나와 맨유는 리그 우승 4회를 기록했다.



테크닉과 별개로 칸토나는 그라운드와 팬을 모두 아우르는 퍼포머(performer)였다. 유니폼의 깃을 세운 스타일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는 그의 발언도 어록이 되어 인기를 얻었다. 퍼거슨과 워낙 궁합이 잘 맞았던 덕분에 당시 동료들은 “예전에 잃어버렸던 아들일 거야”라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셰필드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터트렸던 FA컵 로빙골은 그의 재능과 창의력, 볼터치를 모두 보여줬다. 상대팀 팬 폭행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과 갑작스러운 은퇴 선언마저 신비롭게 기억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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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티에리 앙리 (프랑스)

아스널 역대 최다 득점자(228골). 유벤투스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던 앙리를 아스널은 1,100만 파운드를 주고 손에 넣었다. 거친 영국 스타일에 적응 여부가 우려되었지만, 앙리는 첫 시즌 26골을 기록하며 자기 몸값을 입증했다. 파트리크 비에이라, 로베르 피레, 엠마누엘 프티 그리고 벵거와 함께 ‘프랑스 혁명’의 간판스타였다. 아스널에서 마지막 시즌을 제외한 7시즌 연속 20골 이상을 기록했고, 무패 우승 신화를 썼던 2003-04시즌에는 리그 30골 고지를 밟았다. 리그 득점왕은 총 네 차례(2001-2002, 2003-04, 2004-05, 2005-06).



사실 프리미어리그와 아스널에서 앙리가 어떤 존재였는지를 설명하는 것 자체가 진부하다. 단거리 스프린터를 연상시키는 스피드, 놀라운 유연성으로 만드는 움직임, 테크닉과 상상력이 뒷받침되는 골 장면은 프리미어리그 팬들에게 너무나 익숙하다. 2002-03시즌에는 32골과 함께 도움이 무려 23개에 달했을 정도로 전천후 공격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앙리가 떠난 이후, 아스널이 지금까지 어떤 상태로 지내는지가 그의 영향력을 잘 보여준다. 현재 영국 방송사 <스카이스포츠>의 해설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아스널 감독 부임설이 솔솔 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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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포르투갈)
(편집자 주: 리오 퍼디낸드 인터뷰를 정리한 내용입니다)

“그가 슈퍼스타가 될 거라고 팀 동료 모두가 생각했다. 2003년 스포르팅에서 왔던 순간부터 나는 호날두가 ‘세계 최고’가 되리라고 직감했다. 어린 호날두는 수줍음을 타서 개인 훈련을 할 때도 축구공을 담은 백을 혼자 짊어지고 다른 그라운드에서 혼자 했다. 그는 항상 발목에 무거운 주머니를 차고 스텝오버와 양발 슛을 연습했다.”

“2005-06시즌이 그에겐 터닝포인트였다고 생각한다. 처음 왔을 때 그는 개인기를 뽐내고 싶어하는 마음이 강했다. 하지만 그 시즌부터 득점과 도움이 터져 나오면서 호날두는 쇼맨에서 게임체인저(game-changer)로 변신했다. 그가 우리 팀에 있다는 사실이 그냥 행복할 뿐이었다. 2006-07시즌 풀럼 원정에서 그는 하프라인부터 드리블하기 시작해서 막판 결승골을 터트렸다. 팀이 필요할 때 골을 넣을 줄 아는 선수가 된 것이다.”



“그는 팀플레이어였다. 이기적인 선수는 팀의 발목을 잡는 탓에 절대로 승리를 쟁취할 수가 없다. 호날두가 이기적인 선수이기에는 너무 많은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그냥 앉아서 일이 해결되기를 기다리지 않는 것이 베스트 플레이어다. 최고 선수는 ‘내게 볼을 줘. 뭔가 만들어내겠어’라고 말한다. 그런 선수 중에서 호날두는 최고였다.”

“지난 시즌 그가 UEFA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우승을 확정하는 페널티킥을 찰 수 있어서 정말 기뻤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합당한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호날두는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한다. 그만큼 프로페셔널한 선수를 지금까지 나는 본 적이 없다. 그는 항상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한다. 그렇게 집중하고, 자기 능력이 자신감을 가진 선수라면 그에 따른 보상도 당당히 즐길 자격이 있다. 호날두는 그런 자격을 가졌다.”

사진/그래픽=FourFourT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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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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