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list] 우리를 놀라게 한 이적 1-10위

기사작성 : 2017-02-01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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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Andy Murray 외]

유럽 축구의 겨울 이적시장이 문을 닫았다. 중국발 태풍이 잉글랜드와 스페인 등을 강타한 가운데 빅클럽들은 몸을 사렸다. 아래에서 소개할 충격적인 이적이라 할 만한 케이스는 많지 않았다. 월드 No.1 풋볼매거진 <포포투>가 우리를 놀라게 한 이적 20건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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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존 오비 미켈

2005년 맨유 유니폼을 든 미켈의 사진이 공개되었다. 첼시는 미켈의 노르웨이 체류 비용을 지원했다는 증거를 내밀며 소유권을 주장했다. 설상가상 린 오슬로의 선수 등록이 구단 이사에 의해 위조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노르웨이축구협회가 중재에 나서 상황을 정리했다. 첼시가 맨유(1200만 파운드)와 린(400만 파운드)에 이적료를 내는 조건으로 미켈의 완전영입 권리를 획득했다. 첼시에서 11시즌을 뛰며 미켈은 UEFA챔피언스리그를 비롯해 모든 영예를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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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카를로스 테베스 &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남미 최고 재목 2인이, 뜬금없이, 강등권에서 헤매는 웨스트 햄에 입단했다. 2006년 여름 나란히 업튼파크에 입성했는데, 마스체라노는 반 시즌 만에 리버풀로 떠났고, 테베스는 해머스의 강등 탈출 구세주가 된 뒤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

두 선수의 ‘주인’은 코린티안스가 아니라 미디어 스포츠 인베스트먼트(MSI)라는 회사였다. 프리미어리그는 ‘제3자 소유권 금지’를 이유로 웨스트 햄에 벌금 550만 파운드를 물게 했고, 셰필드 유나이티드는 “부정 등록 선수인 테베스가 너무 잘해서 웨스트 햄이 잔류하고 우리가 강등되었다”라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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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에릭 칸토나

리즈 유나이티드의 회장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데니스 어윈을 사고 싶다고 말했다. 하필 그 자리에 있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당시 리즈 소속이었던 에릭 칸토나를 팔라고 역제안했다. 칸토나의 괴팍한 성격을 부담스러워 하던 리즈 고위층은 단돈 120만 파운드만 받고 흔쾌히 협상에 합의했다.

맨유에서 다섯 시즌을 뛰며 칸토나는 구단 역사상 가장 위대한 레전드로 자리매김했다. 칸토나의 카리스마와 존재감은 ‘퍼거슨 시대’의 개막을 가능하게 한 초석이었다. 서른한 살에, 난데없이’ 현역 은퇴를 선언한 결정도 칸토나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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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루터 블리셋

<포포투> 인터뷰에서 블리셋은 “축구 선수의 몸값으로 그렇게 큰돈을 치를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라고 말했다. 리그 27골로 잉글랜드 1부 리그(현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을 차지한 블리셋은 이탈리아의 AC밀란으로 이적했다. 단, 당시 밀란은 2부에서 세리에A로 갓 승격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세리에A 30경기에서 5골에 그친 블리셋은 한 시즌 만에 왓포드로 반값에 복귀했다. 블리셋은 “따분하고 수비적인 축구 안에서 이기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도 생기지 않았다”라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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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장-마르크 보스만

축구판을 완전히 뒤바꾼 선수가 바로 보스만이다. 1990년 여름 그는 소속팀 RFC 리에주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둔케르케가 그를 영입하려고 했지만, 원 소속팀인 RFC 리에주는 이적료를 높게 불러 이적을 막은데다 보스만의 연봉을 25% 수준으로 대폭 삭감했기 때문이다.

5년에 걸친 법정 공방에서 보스만은 승소했다. 원소속팀과 계약이 만료되는 선수는 이적료 없이 다른 팀으로 이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판결은 축구 권력이 구단에서 선수로 이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선수들의 충성심이 사라지게 되었다는 전통적 시각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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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케빈 키건

1980년까지 케빈 키건은 영국 축구의 슈퍼스타였다.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의 주장을 맡았고, 발롱도르도 수상했다. 음반 발매, 광고 모델, TV프로그램 출연 등 화려한 나날을 보냈다. 분데스리가에서 복귀한다면, 당연히 빅클럽이 될 거로 모두가 믿었다.

예상 밖으로 리버풀이 ‘바이백’ 권리를 포기했고, 키건은 하위권 구단인 사우샘프턴으로 향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두 시즌 간 키건은 리그 68경기 37골로 뛰어난 활약을 펼친 뒤에 뉴캐슬로 이적해 말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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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로베르토 바지오

1990년 UEFA컵 결승전에서 로베르토 바지오의 피오렌티나는 유벤투스에 합산 스코어 3-1로 무릎을 꿇었다. 놀랍게도 그해 여름 이적시장에서 바지오는 유벤투스로 이적했다. 무릎 부상으로 2년 가까이 뛰지 못했을 때도 그를 기다렸던 피오렌티나의 팬들은 격노했다. 이적 소식이 전해지자 피오렌티나 시내에서는 며칠간 폭동이 이어졌다.

이적 후 바지오는 첫 피오렌티나 원정에서 페널티킥을 거부했고, 교체되어 나가면서 피오렌티나 머플러까지 손에 들기도 했다. 유벤투스에서 리그 우승과 발롱도르 수상이란 영광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유베 팬’들의 마음을 잡지 못한 이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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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모 존스턴

엄밀히 말해 존스턴이 레인저스에서 뛰는 카톨릭 신자 1호는 아니다. 하지만 80년대 중반까지 셀틱의 최전방 공격을 이끌며 팬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탓에 그는 배신의 상징으로 각인되고 말았다.

온갖 잡음과 야유, 살해 협박 등을 이겨내며 존스턴은 아이브록스(레인저스 홈구장)에서 두 시즌 동안 리그 76경기 31골을 기록했다. 1991년 그는 잉글랜드의 에버턴으로 이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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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솔 캠벨

계약 만료가 가까워진 토트넘 주장 캠벨의 선택은 ‘견원지간’ 아스널 이적이었다. 캠벨은 ‘우승하고 싶었지만 토트넘은 그런 기대를 채우지 못할 것 같았다’라는 결심 이유를 설명했다. 아스널에서 남긴 프리미어리그 우승 2회, FA컵 우승 3회는 자신의 결정을 정당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캠벨 본인의 대처는 대중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 토트넘 팬들이 자신에게 야유와 비난을 보낸 ‘진짜’ 이유를 그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인종차별이란 필터만 앞세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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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루이스 피구

바르셀로나 시절 한 동료는 피구를 놓고 “그 어떤 두려움에도 숨지 않는 선수”라고 평했다. 하지만 흰색 유니폼을 입고 돌아온 캄프누에서 피구를 향했던 분노의 크기에 선수 본인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경기 중 그가 볼을 건드릴 때마다 관중석에서는 오렌지와 라이터, 맥주병 등이 날아 들었다. 1년 뒤에는 돼지머리까지 등장했다.

피구는 캄프누 원정에서 더는 코너키커로 나서지 않았고, 비난에도 유연하게 대처했다. 한편,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피구의 합류는 갈라티코스 신시대 개막을 의미했다. 이적 후 3년에 걸쳐 지네딘 지단, 호나우두, 데이비드 베컴이 영입되었다.
writer

by Andrew Murray

Twitter @Andy_MurrayF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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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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