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list] 우리를 놀라게 한 이적 11-20위

기사작성 : 2017-02-01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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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Andy Murray 외]

유럽 축구의 겨울 이적시장이 문을 닫았다. 중국발 태풍이 잉글랜드와 스페인 등을 강타한 가운데 빅클럽들은 몸을 사렸다. 아래에서 소개할 충격적인 이적이라 할 만한 케이스는 많지 않았다. 월드 No.1 풋볼매거진 <포포투>가 우리를 놀라게 한 이적 20건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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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클라이브 앨런

아스널이 10대 스트라이커를 사기 위해 무리한 지출을 감행하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심지어 영입 후 딱 두 달 만에 왼쪽 풀백을 데려오기 위해 트레이드 카드로 꺼냈다는 건 더 믿기 어렵다. 하지만 이건 실화다, 실화!

1980년 아스널은 19세였던 앨런을 영입하기 위해 무려 125만 파운드를 투자했다. 당시로선 파격적인 가격이었다. 프리시즌 세 경기에 출전한 그는 두 달 후 후보 골키퍼였던 폴 배런과 묶여 케니 샌솜과 트레이드 되었다. 이후 샌솜은 아스널에서 400경기 가까이 뛰었다. 앨런은 어떻게 됐냐고? 크리스탈 팰리스, 퀸즈파크레인저스, 토트넘홋스퍼, 보르도, 맨체스터 시티, 첼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밀월…! 등에서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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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페르난도 토레스

2006년의 안드레이 솁첸코, 그리고 2011년의 페르난도 토레스까지. 첼시는 스트라이커를 언제 사야 하는지 잘 모르는 클럽이다.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토레스 영입에 무려 5000만 파운드를 쏟아부었다. 첼시 역사상 가장 비싼 금액을 썼다. 리버풀에서 엄청 잘했으니 당시엔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토레스가 첼시에서 보여준 모습은 실망스러웠다. 리그 110경기에서 20골만을 기록했을 뿐이다. 첼시 이적 후 전성기에서 내려온 모습이었다. 이후 토레스는 AC밀란을 거쳐 다시 마드리드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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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토미 로튼

3부 리그의 노츠카운티 감독이었던 아서 스톨러리는 당시 1부 리그 첼시 소속이었던 로튼을 설득했다. 첼시 물리치료사이기도 했던 그는 로튼이 두 단계 아래 레벨 리그로 이적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로선 영국 기록이었던 20만 파운드의 이적료도 로튼을 자극했다.

결국 로튼은 노츠카운티로 이적했다. 당시 로튼을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관중만 3만 명에 달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금방 떠날 것이라 예상했지만, 로튼은 노츠카운티에서 5시즌을 머물렀다. 166경기에 출전해 103골을 터뜨리며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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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로빈 판 페르시

“나는 내 인생에서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내 안의 소년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가 뭘 원했냐고? 그 아이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외치고 있었다.” 판 페르시가 아스널을 떠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로 이적하며 남긴 말이다.

판 페르시는 아르센 벵거 아스널 감독에겐 아이러니한 존재다. 2011-12시즌 처음으로 부상 없이 38경기에 모두 출전했고 서른 골을 터뜨렸다. 최고의 시즌을 보낸 후 그는 맨유로 떠났다. 아스널과의 계약 연장을 뒤로 하고, 맨체스터 떠난 판 페르시는 팀의 주축으로 활약했고, 리그 우승까지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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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알프레도 디 스테파뇨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늘 앙숙이었다. 축구에 앞서 정치적으로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기 때문에 만나면 전쟁에 가까운 싸움이 이어졌다. 과거 두 팀은 알프레도 디 스테파뇨 영입을 놓고도 치열하게 경쟁했다.

1953년 당시 디 스테파뇨의 소유권은 애매했다. 진짜 소유권은 전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에 있었지만, 그가 실제로 뛰는 팀은 밀로나리오스였다. 공교롭게도 바르셀로나는 리버 플레이트와, 레알 마드리드는 밀로나리오스와 이적 협상을 했다. 결과적으로 디 스테파뇨는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었다. 11시즌 동안 뛰며 그는 전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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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앨런 시몬센

1982년 디에고 마라도나의 합류와 함께 시몬센은 바르셀로나 벤치를 지키는 신세가 됐다. 올해의 유럽 선수로 꼽히기도 했던 스타는 결국 잉글랜드 2부 리그의 찰턴 이적을 선택했다. 조용히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찰턴의 회장 마크 헐러는 레알 마드리드보다 많은 이적료를 제시했다. 당시로선 적지 않은 324만 파운드였다. 꽤 많은 돈을 투자했지만, 찰턴은 시몬센 영입 효과를 크게 보지는 못했다. 시몬센은 딱 한 시즌 뛴 후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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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트레버 프란시스

허세가 좀 심한 편이었던 브라이언 클러프 당시 노팅엄 포레스트 감독은 프란시스의 이적료가 99만 9999파운드라고 주장했다. 영국 최초로 100만 파운드를 넘기는 건 원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전해진다. 그래도 이 정도 이적료는 당시로선 충격적이었다.

첫 번째 시즌 말미 프란시스는 말뫼를 상대로 결승골을 터뜨리며 유러피언컵 우승을 이끌었다. 이듬 해에도 노팅엄은 유럽 정상에 섰다. 그때에도 클러프 감독은 프란시스의 적응을 위해 자신이 얼마나 노력했는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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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호비뉴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는 빅네임 영입이 필요했다. 호비뉴에 앞서 다비드 비야와 카카 등이 아부다비그룹의 제안을 거절했다. 맨시티는 초조했다. 마침내 희소식이 들려왔다. 막판에 레알 마드리드가 325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수용해 호비뉴를 보내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렇게 온 세상이 뒤집어졌다.

하지만 호비뉴는 맨시티행을 원하지 않았다. 계약도 무산되는 것처럼 보였다. 이해할 만했다. 레알을 떠나는 것 자체가 호비뉴에겐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잉글랜드로 향했고, 맨시티는 호비뉴 영입을 기점으로 이적시장의 큰 손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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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앤디 콜

1994년 당시 뉴캐슬 유나이티드 감독이었던 케빈 키건은 “퍼기에게 전화를 걸어 앤디와 통화한 적이 있냐고 물어봤다”라고 말했다. 두 사람 사이 엄청난 긴장감이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키건은 아마 앤디가 훈련하는 모습을 보며 이적을 막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무려 700만 파운드였다. 뉴캐슬도, 팬들도, 키건도 앤디의 이적을 막기는 어려웠다. 납득할 만한 이적이었다. 놀랍게도 앤디는 맨유 이적 후 첫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다. 상대가 친정 뉴캐슬이었기 때문이다. 친정에 대한 예우를 차린 그는 이후 맨유에서 8개의 트로피를 챙겼다. 프리미어리그와 FA컵, 챔피언스리그에서 정상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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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리카르도 비야 & 오스발도 아르딜레스

1978년 셰필드 유나이티드 감독 해리 하슬람은 아르헨티나 월드컵을 보기 위해, 정확하게 말하면 17세의 디에고 마라도나를 보기 위해서였다. 하슬람의 친구였던 토트넘 감독 케이스 버킨쇼도 동행하기로 했다. 버킨쇼 눈에 든 선수는 아르딜레스였다.

월드컵 이후 아르딜레스는 새 팀을 찾는 데에 오랜 시간을 할애했다. 상황이 녹록치 않았다. 이 소식을 들은 버킨쇼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아르딜레스와 더불어 그의 아르헨티나 동료였던 비야까지 함께 영입했다. 두 콤비를 앞세운 토트넘은 1981년 FA컵 우승을 차지했다. 비야는 이 경기에서 결승골을 터뜨렸다. 버킨쇼의 눈은 정확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이매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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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rew Murray

Twitter @Andy_MurrayF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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