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knowledge] 축구계 이적 ‘연어’ 10인

기사작성 : 2016-08-09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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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Ryan Fisher]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폴 포그바를 영입했다. 클럽은 이 소식을 ‘#POGBACK’이라는 해시태그로 알렸다. 2012년 여름 떠났다가 돌아왔기 때문이다.

이적이 빈번한 유럽 축구에서는 떠났던 팀으로 돌아온 선수들이 적지 않다. 서로 얼굴 붉히며 헤어졌다가 금의환향하는 선수도 있고(그래, 포그바), 두 번 다시 안 볼 것처럼 떠났다가 머쓱하게 돌아오는 선수도 있다(네 얘기잖아, 괴체!)

월드 No.1 풋볼매거진 <포포투>가 친정으로 돌아온 선수 10인을 모았다.

#1. 유네스 카불 (토트넘: 600만 파운드에 팔고, 950만 파운드에 되사고)

2007년 카불은 프랑스 옥세르에서 토트넘 홋스퍼로 이적했다. 후안데 라모스 감독의 눈에 들지 못한 카불은 이듬해 여름 이적시장에서 떠나야 했다. 해리 레드냅이 그를 포츠머스로 데려갔는데, 돋보이는 활약으로 그곳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18개월 뒤, 토트넘은 카불을 다시 데려오기로 마음먹었다. 정확히 말하면, 토트넘의 감독이 된 레드냅이 그렇게 했다. 레드냅은 카불을 “대기만성형”이라고 칭찬하면서 950만 파운드를 기꺼이 포츠머스에 지급했다. 런던 클럽에서 카불은 리그 89경기를 뛴 뒤에 2015년 선덜랜드로 이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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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라르드 피케 (바르셀로나: 공짜로 보내고, 500만 파운드에 되사고)

라마시아를 졸업하자마자 피케는 바르셀로나에 앞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와 프로 계약을 맺었다. 2015년 <포포투> 인터뷰에서 피케는 “그때 맨유는 유소년인 내가 프로 선배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바르셀로나의 철학과는 달랐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유소년 출신보다 외국에서 영입된 선수가 우선시되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맨유에서 보낸 4시즌 동안 피케는 선발 경쟁에서 밀려 리그 12경기 출전에 그쳤다. 리오 퍼디낸드와 네마냐 비디치를 넘어설 수 없음을 깨달은 피케는 2008년 이적료 500만 파운드로 친정 바르셀로나로 돌아왔다. 이후 그는 눈부시게 발전했다. 라리가 우승 4회, UEFA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 그 위에 월드컵과 유로 트로피까지 거머쥐었다.

#3. 저메인 디포 (토트넘: 600만 파운드에 팔고, 1575만 파운드에 되사고)

디포는 프리미어리그 클럽 다섯 곳에서 뛰었지만,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친 시기는 역시 토트넘에서였다. 2004년 디포는 웨스트햄에서 700만 파운드 몸값으로 토트넘의 유니폼을 입었다. 4년 동안 디포는 139경기 43골을 기록했고, 포츠머스로 떠났다.

포츠머스에서 디포는 경기당 1골에 가까울 정도로 고감도 결정력을 과시했는데, 이에 감탄했는지 토트넘이 1년 만에 그를 팔았던 금액의 두 배가 넘는 1575만 파운드에 되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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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피터 크라우치 (토트넘: 7만2천 파운드에 팔고 1000만 파운드에 되사고 // 포츠머스: 500만 파운드에 팔고, 1100만 파운드에 되사고)

본 기사에서도 크라우치는 유별나다. 그를 팔았다가 되산 클럽이 두 군데나 되기 때문이다. 1990년대 토트넘 유소년이었던 크라우치는 한 경기도 뛰지 못한 채 2000년 7만2천 파운드 몸값으로 퀸즈 파크 레인저스로 팔렸다.

포츠머스, 애스턴 빌라, 노리치, 사우샘프턴, 리버풀을 거친 끝에 크라우치는 2009년 화이트 하트 레인으로 돌아왔다. 이적료는 1000만 파운드, 계약기간은 5년이었다. 토트넘에서 프리미어리그 73경기 12골에 그쳤지만, UEFA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확정한 맨체스터 시티전 득점으로 팬들의 기억에 자리잡는다.

2001년 강등된 포츠머스는 QPR에 150만 파운드를 지급해 크라우치를 영입했다. 18골을 넣으며 맹활약한 크라우치는 1년 만에 1500만 파운드 몸값으로 애스턴 빌라의 선수가 되었다. 돌고 돌아 크라우치는 2008년 포츠머스로 돌아왔다. 포츠머스는 팔았던 가격의 두 배가 넘는 금액을 지급해야 했다. 크라우치는 리그 38경기에서 11골을 넣었고, 떠난 곳이 위에 언급한 토트넘.

#5. 마르코 로이스 (도르트문트: 공짜로 보내고, 1500만 파운드에 되사고)

도르트문트에서 축구를 배운 로이스는 2006년(당시 17세) 로트 바이스 아흘렌으로 떠났고,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에서 3년 동안 뛰면서 분데스리가 최고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어린 로이스를 떠나 보냈던 도르트문트가 2012년 거금 1500만 파운드를 내놓아 그를 다시 데려갔다.

마리오 괴체,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일카이 귄도간, 마츠 훔멜스. 그 다음은 마르코 로이스? 아직은 아니다. 1500만 파운드 몸값으로 돌아온 친정에서 그는 이번 시즌도 뛴다. 최소한 지금까지는 그렇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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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앨런 시어러 (뉴캐슬: 입단 테스트에서 떨어트리고, 1500만 파운드에 되사고)

시어러는 사우샘프턴에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팬들은 그가 뉴캐슬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축구가 전부인 그곳 출신인 골잡이가 남해안까지 내려왔으니 당연했다. 알고 보니 시어러는 입단 테스트에서 뉴캐슬의 눈도장을 받지 못했다.

사우샘프턴으로서는 행운이었다. 158경기에서 시어러는 43골을 넣었고, 블랙번 로버스로 이적해 창단 첫 1부 우승(1995)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유로96에서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으로 활약한 시어러를 잡기 위해 맨유가 달려들었지만, 고향 클럽의 관심을 접한 시어러는 머뭇거림 없이 뉴캐슬로 향했다. 당시 뉴캐슬은 세계 최고액 이적료인 1500만 파운드를 내놓았다. 404경기 206골 기록을 남겼으니 남는 장사였다고 해도 좋다.

#7. 네마냐 마티치 (첼시: 2100만 파운드와 묶어 패키지로 보내고, 2295만 파운드에 되사고)

슬로바키아 소형 클럽 코시치에서 뛰던 마티치는 2009년 첼시에 입단했다. 주전 경쟁에서 밀려 비테세로 임대되었지만, 돌아온 첼시의 지휘봉을 잡은 카를로 안첼로티의 마음을 잡지 못했다. 결국 첼시는 다비드 루이스를 얻기 위해 현금 2100만 파운드와 마티치를 묶어 벤피카로 보냈다.

조르제 제수스의 조련 아래서 마티치는 특급 수비형 미드필더로 거듭났다. 2014년 첼시는 재빨리 실수를 깨닫고 마티치를 2295만 파운드 몸값을 치러 런던으로 데려왔다. 2014-15시즌 마티치는 프리미어리그 우승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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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마리오 괴체 (도르트문트: 3700만 유로에 팔고, 2600만 유로에 되사고)

괴체의 복귀가 화제가 된 건 3년 전 바이에른뮌헨으로 떠난 과거 때문이다. 도르트문트 유스팀에서 성장해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성장한 그가 팬들의 지지와 기대를 뒤로하고 라이벌 바이에른으로 이적하자 팬들은 /'/배신자/'/라며 그를 비난했다. 이적과 팀에 많은 이적료를 안겨준 것은 별개였다. 

도르트문트의 바람이 통한 건지 괴체는 바이에른에서 부진했다. 치열한 주전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했고, 새로운 사령탑 카를로 안첼로티의 부임과 함께 새 팀을 찾기 시작했다. 괴체에게 도르트문트는 고향 같은 곳이다. 과제는 자신을 원망했던 팬들의 마음을 돌리는 것이다. 

#9. 니콜라스 아넬카 (PSG: 50만 파운드에 팔고, 2200만 파운드에 되사고)

1996년 아넬카는 PSG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유럽 빅클럽이 움직이자 당시만 해도 인기에 비해 전력이 떨어졌던 PSG는 아넬카를 팔아야 했다. 아스널이 그를 50만 파운드에 사갔고, 2년 뒤에 레알 마드리드가 2230만 파운드라는 거금을 뿌려 아넬카를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로 데려갔다.

아쉽게도 아넬카는 마드리드에 정착하지 못했다. 라리가 데뷔골도 이적 7개월 만에 나왔고, 비센테 델 보스케와 불화를 겪었다. 아넬카는 45일 무급 정직을 당하기도 했다. 아넬카는 “그들은 나를 개처럼 다뤘다. 모든 이와 맞서야 했다”라고 말했다. ‘썩소(Le Sulk)’라는 별명이 괜히 생긴 게 아니라는 말씀.

이적처를 찾던 와중에 친정인 PSG가 등장했다. 2000년 파리 인기 클럽은 2200만 파운드를 치러 아넬카를 데려갔다. 리그 39경기 10골이란 조촐한 활약을 남긴 채 아넬카는 다시 여행을 떠났다. 리버풀 임대 후 맨체스터 시티로 완전 이적했다. 첼시, 페네르바체, 볼턴, 상하이 선화 등 아넬카는 12개 클럽으로 돌아다녔는데, 그 과정에서 기록된 이적료 합계 금액이 자그마치 1억1천만 파운드에 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최대 피해자는 첫 클럽인 PSG였다.

#10. 세스크 파브레가스 (바르셀로나: 공짜로 보내고, 2700만 파운드에 되사고)

라마시아 친구인 제라르드 피케처럼 파브레가스도 바르셀로나와 프로 계약을 맺지 않은 채 프리미어리그로 떠났다. 스페인 프로리그의 연령 제한 맹점을 교묘하게 파고 든 아스널이 파브레가스를 차지했다. 2003년 파브레가스는 아스널 역대 최연소 1군 출전 신기록을 작성했고, 몇 년 뒤에는 주장 완장으로 차고 팀을 이끌었다.

그러나 파브레가스의 마음속에는 항상 고향 클럽이 있었다. 결국, 2011년 그는 2700만 파운드 이적료를 기록하며 바르셀로나로 돌아갔다. 아쉽게도 그곳에서 파브레가스는 온전한 기회를 얻지 못하며 주변부로 맴돌았다. 3년 뒤에 그는 익숙한 프리미어리그로 돌아왔다. 어이쿠, 첼시!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이매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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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an Fis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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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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