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interview] 크레스포, 리버풀전 전반 후, 우리는..

기사작성 : 2016-01-20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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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 아르헨티나는 천재 미드필더 생산공장이다. 디에고 마라도나와 리오넬 메시를 낳았다. 아리엘 오르테가, 세바스찬 베론, 후안 리켈메도 있다. 앙헬 디마리아와 하비에르 파스토레가 아르헨티나 플레이메이커의 명맥을 잇는다.
 
그런 탓에 에르난 크레스포는 예외적 존재였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스트라이커. 마리오 켐페스, 가브리엘 바티스투나와 함께 크레스포는 아르헨티나 골잡이 계보에 이름을 올렸다. 리베르타도레스와 챔피언스리그의 결승전에 모두 섰던 사나이, 이탈리아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외국인, 세계 최고액 몸값의 주인공. 크레스포는 그랬다.
 
지금 크레스포는 이탈리아 세리에B 모데나의 감독으로 일한다. <포포투>가 람보르기니, 마세라티의 도시인 모데나에서 ‘크레스포 감독’과 만났다. 인사를 나누고, 마주앉은 커피 테이블 위로 종이를 올려놓았다. <포포투> 팬들이 보내온 질문이 출력된 종이를 들고 크레스포가 직접 대답하기 시작했다.
 
(편집자 주: <포포투> 2016년 1월호에 게재된 ‘원온원 인터뷰’에서 주요 내용을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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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아르헨티나는 10번 사랑으로 유명하지만, 당신은 아르헨티나의 위대한 9번이 되었다. 어린 시절 당신의 우상은 누구였는가? (줄리아, 이메일)
A) 내 또래는 누구나 위대한 공격수 마리오 켐페스를 알고 있다. 내가 세 살 때(1978년) 켐페스가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조국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너무 어렸을 때라서 당시 장면은 잘 생각나지 않지만, 1982년 월드컵의 이탈리아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파올로 로시가 인상 깊었다. 당대의 모든 선수가 디에고 마라도나의 그늘에 가려 있었다. 로시는 차원이 달랐다. 나는 스타일상 마라도나처럼 될 수 없어서 또 다른 천재인 개리 리네커를 흠모하기 시작했다. 리네커는 진정한 9번(실제 등번호는 10번)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Q) 수페르클라시코(리베르 플라테 vs 보카 주니오르)를 유럽의 유명 더비와 비교한다면? (곤살로 오르티스, 산타페)
A) 리베르 플라테에서 뛰던 어린 시절, 나는 자주 보카를 상대했다. 라이벌 의식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었다. 꼭 보카 경기가 아니더라도 우린 항상 보카를 의식했다. 라이벌 의식은 본능에 가까웠다. 1군에서 수페르클라시코를 처음 경험한 때는 18세였던 1994년이다. 피치 위에 올랐는데 진동을 느꼈다. 이상했다. 알고 보니 관중이 뛰는 바람에 땅이 실제로 흔들리고 있었다! 아리엘 오르테가와 내가 골을 넣어 2-0으로 이겼다. 거의 5년 만의 승리였기 때문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게다가 라봄보네라(보카 홈경기장) 원정이었다. 리베르 플라테 서포터즈는 관중석 최상단인 하늘과 맞닿은 곳에 모여 있었다. 이날 처음 라봄보네라를 방문한 내 아버지도 있었다. 그 높은 자리에 앉아서 자신의 아들이 리베르 플라테의 유니폼을 입고 보카 원정에서 골을 넣는 모습을 지켜보는 기분을 상상해보라!
 
Q) 1996년 코파리베르타도레스 결승전에서 2골을 넣어 리베르 플라테에 우승을 선사한 것이 선수 시절 하이라이트였는가? 우승 축하 파티는 어땠는가? (마틴 라이트, 페이스북)
A) 꿈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리베르 플라테는 1986년 코파리베르타도레스에서 처음 우승했다. 이후 두 번째 영광을 노리고 있었다. 1986년에는 유스팀 소속으로 에스타디오 모누멘탈(리베르 홈경기장)의 테라스에서 봤다. 그 뒤로 줄곧 그라운드에서 코파리베르타도레스를 들어 올리는 장면을 상상했다. 정확히 10년 후, 우리가 결승전에서 10년 전과 같은 상대인 아메리카 데 칼리를 꺾고 우승했다. 나는 결승전 2골을 포함해 그 대회에서만 10골을 넣었다. 우승 이후 내 인생도 크게 달라졌다. 스무 살이던 당시까지 리베르 플라테만이 내 삶의 전부였다. 우승 파티는 유투브 영상이 있으니 직접 확인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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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1996년 파르마로 떠날 때 이탈리아에서 그렇게 오래 살게 될 줄 알았는가? 왜 그렇게 세리에A를 좋아했는가? (리카르도 포지, 페이스북)
A) 이탈리아 사랑은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2년 월드컵에서 이탈리아가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을 상대했던 경기를 시청한 것이 계기였다. 아르헨티나가 우승했던 1986년 월드컵에서도 유일한 무승부 상대가 이탈리아였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가 준결승전에서 다시 만났다. 어린 시절부터 월드컵을 볼 때마다 늘 이탈리아가 있었다. 디에고 마라도나를 포함한 당대 많은 스타들이 이탈리아 클럽에서 뛰고 있었다. 나는 이탈리아 리그를 보면서 자랐다. 잉글랜드나 스페인은 TV에서 중계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본 적이 없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탈리아 축구는 내 스타일과도 잘 맞았다.
 
 
Q) 1998-99시즌 후반 파르마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2월말까지 리그 우승을 향해 달리던 파르마가 리그 마지막 11경기에서 6패를 당하며 4위까지 미끄러졌다. (루시오, 트위터)
A) 선수층이 얇었다. 고정된 멤버가 거의 모든 경기를 뛰어야 했다. 산시로 원정패가 리그 우승 경쟁에 치명적이었다. 그것으로 우승의 꿈은 사라졌다. 불과 며칠 전 마드리드에서 열린 아틀레티코와 UEFA컵 경기에서 밀란전에 나선 똑같은 14명이 전력을 다한 상태였다. 1차전에서 3-1로 이겨 놓았기 때문에 UEFA컵을 포기할 수 없어 총력전을 펼쳤다. 리그를 병행하면서 코파이탈리아 준결승전에서 인테르와 만났다. 결승전에서는 피오렌티나와 다시 홈&어웨이로 싸웠다. 선수들이 지쳐갔다. 한정된 자원으로 너무 많은 빅매치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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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2000년 라치오가 세계 최고액 이적료로 당신을 데려갔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가? (닉 케이, 이메일)

A) 압박감? 전혀 없었다. 세상에서 몸값이 가장 비싼 선수가 될 것이라고 들었다. “알았다”라고 했다. 3,500만 파운드 기록은 세리에A 내 거래에서는 아직까지 깨지지 않았다. 금액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축구에만 집중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예를 들겠다. 스무 살 때 아메리카 데 칼리와 코파리베르타도레스 결승전을 치르기 위해 원정을 떠났을 때다. 콜롬비아의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정부군에 사살당한 지 2년 밖에 지나지 않던 때였다. 콜롬비아는 치안이 불안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언론은 온통 마약 카르텔에 관한 보도만 쏟아냈다. 그런 게 진정한 압박감이다. 경기 몇 주 전부터 우리는 불안에 떨었다. 막상 도착하자 그들은 우리에게 매우 좋은 대접을 해줬다. 그런 일도 겪었으니 이적료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Q)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는 현재 축구계에서 가장 ‘핫’한 사람이다. 인테르 시절 그는 어떤 동료였는가? (잔카를로 제노베시, 페이스북)
A) 지금은 그때보다 기량이 성숙한 것 같다. 즐라탄은 매우 강한 성격이었지만, 동시에 섬세한 면도 있었다. 인테르에서 그와 좋은 추억이 많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나 메시가 동시대 선수라는 사실이 그에겐 불운인 것 같다. 즐라탄의 기량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메시나 호날두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본다. 그 둘은 외계인이지 않은가? 메시와 호날두가 없었다면 아마도 즐라탄이 여러 차례 발롱도르를 수상했을 지도 모른다.
 
Q) 조제 모리뉴와 관계는 어땠는가? 모리뉴가 첼시에 부임하면서 곧바로 당신을 AC밀란으로 임대 보냈다. 둘 사이에 뭔가가 있었던 것 같은데? (데이브, 이메일)
A) 우리 관계는 환상적이었다. 모리뉴가 첼시의 감독으로 왔을 때, 그는 내가 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남고 싶지만, AC밀란의 제안이 마음에 좀 걸린다”라고 대답했다. 밀란은 어린 시절부터 줄곧 TV로 시청해오던 클럽이었다. 마르코 판 바스턴이 뛰던 클럽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모리뉴에게 “첼시와 밀란 중에서 하나만 고른다면 밀란일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좋다. 일주일 안에 밀란 이적이 성사되지 않는다면 첼시에 남는다. 오래 기다릴 수가 없다. 만일 네가 떠난다면 새 선수를 사와야 하니까”라고 대답했다. 계약은 성사되었다. 이탈리아행은 가슴에 품은 열정, 어린 시절의 꿈과 관련된 선택이었다. 그 뒤 첼시가 마테야 케즈만과 아르연 로번을 영입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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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왜 첼시에서 잘 풀리지 않았을까? (데이비드 피셔, 페이스북)
A) 그때 개인적으로 어려운 일을 겪었다. 우리 가족이 아이 둘을 잃었다. 버텨내기 힘든 시간이었다. 축구를 하기엔 훌륭한 환경이었다. 첼시 팬들은 대단했다. 내게 응원가도 만들어줬다. 팬심(心)이 느껴져 나도 그들에게 기쁨을 선사하고 싶었다. 첼시 생활은 즐거웠다. 영국인은 선수를 존중하는 문화를 가졌다. 런던이 좋았다. 그때로 돌아가겠냐고 묻는다면 나의 답은 언제나 ‘예스’다. 
 
 
Q) 리버풀과 2005년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하프타임 때 밀란 라커룸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알려진 것처럼 선수들이 정말 우승을 자축하고 있었나? (마이클 게일, 트위터)
A) 잠깐, 인터뷰에서 ‘개소리’라는 표현을 써도 되는가? 그게 무슨 개소리야! 축구를 시작하면 제일 처음 배우는 것 중에 하나가 경기 시간이 90분이라는 거다. 밀란 선수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당시 베테랑이 많았다. 정말 우리가 하프타임에 우승 파티를 열었다고 생각하는가? 일부 기자들이 지어낸 소설에 불과하다. 우리는 세 골 리드에도 후반에 더 나은 플레이를 하기 위한 전략을 짰다. 이스탄불의 비극은 인간 능력 밖의 일이었다. 그게 축구다. 축구는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아픔도 준다. 전반전은 환상적이었다. 컨디션도 좋아서 내가 2골을 넣었지만 결국 패했다. 지금도 그날 졌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 경기 후 팀 분위기는 장례식장 같았다. 라커룸, 클럽 버스, 심지어 숙소로 돌아와서도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쉽지 않았다. 몇몇 선수는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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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코파리베르타도레스와 챔피언스리그에서 모두 결승전에 뛰었다. 어느 쪽이 더 큰 대회라고 생각하는지? (조나단 위아트, 슈루즈베리)
A) 좋은 질문이다! 우열을 가릴 수는 없지만, 남미 출신이라서 코파리베르타도레스 쪽에 더 끌리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성인이 된 다음에는 챔피언스리그를 향한 열망을 품게 되었지만, 아르헨티나에서는 챔피언스리그를 전혀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의 꿈은 언제나 코파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이었다.
 
Q) 2002년 월드컵에서 벤치로 밀려서 실망스럽진 않았나? 그때 아르헨티나가 16강 진출에 실패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라이언 데이비스, 트위터)
A) 아르헨티나 축구사의 비극이었다. 우린 더 높이 올라 갔어야 했고, 그럴만한 수준을 갖춘 팀이었다. 1차전에서 나이지리아를 꺾었다. 2차전에서는 잉글랜드에 아쉽게 패했는데, 마지막 3차전에서 스웨덴과 비기고 말았다. 보통 그 정도 경기력이면 열 중 아홉은 이긴다. 운이 우리 쪽으로 오지 않았다. 골대를 맞히는가 하면 스웨덴 골키퍼 마그누스 헤드먼이 기막히게 막아냈다. 후반전 내가 바티스투타를 대신해 투입되자마자 안데르스 스벤손에게 선제골을 허용했다.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은 1962년 이후 처음이었다. 너무나 절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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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ACT FILE
- 에르난 호르헤 크레스포, 1975년 7월 5일생
- 클럽: 1993-96(리베르 84경기 36골), 1996-2000(파르마 151경기 80골), 2000-02 라치오(73경기 48골), 2002-03(인테르 30경기 16골), 2003-04(첼시 31경기 12골), 2004-05(AC밀란/임대 40경기 18골), 2005-06(첼시 42경기 13골), 2006-09(인테르 86경기 29골), 2009-10(제노아 21경기 7골), 2010-12(파르마 50경기 14골)
- 국가대표: 1995-2007 아르헨티나 64경기 35골
- 성취: 아르헨티나 프리메라(1993, 1994), 코파리베르타도레스(1996), 코파이탈리아(1996), UEFA컵(1999),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1999, 2000, 2004, 2006, 2008), 프리미어리그(2006), 이탈리아 세리에A(2007, 2008, 2009)
 
에디트=홍재민, 인터뷰=Andy Mitten, 인물 사진=Mattia Zoppellaro, 사진=Gettyimages/멀티비츠, 유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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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 Mit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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