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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4

[홍재민의 축구話] 유로를 읽지 말고 느껴주세요

[포포투=파리(프랑스)] 내용과 결과. 재미와 승리. 분석과 공감. 축구 안에서 인과관계이거나 아예 동떨어져 있거나 하는 것들이다. 이틀 전(22일) 툴루즈와 보르도를 거쳐 파리로 돌아왔다. 몽파르나스 기차역에서 곧바로 생드니에 있는 스타드 드 프랑스로 갔다. 아이슬란드와 오스트리아의 F조 3차전 현장이었다. 지하철이 찜통이다. 열린 창문으로 지하 냄새가 나는 바람이 들어왔다. 아이슬란드 팬들이 천정을 두들기며 응원 구호를 고래고래 외쳤다. 오스트리아 팬들은 빙긋이 웃으며 땀을 흘렸다. 경기 중 서울에 있는 동료와 문자를 주고받았다. 아이슬란드를 주제로 ‘한국 축구가 배워야 할 궁극점’이라며 서로 낄낄댔다. 전반 18분에 선제골을 넣었다. 롱스로인, 살짝 떨구고, 세컨드볼을 잡아 슛, 골인이다. 이 얼마나 간결한 득점 패턴인가? 메이저 대회에 나갈 때마다 ‘세트피스를 노려야 한다’라고 각오를 다지는 대한민국이 생각났다. 1-1 동점 상태로 후반 추가시간이 시작되었다. 아이슬란드 쪽은 난리가 났고, 오스트리아 쪽은 망연자실이다. 기사 작성을 마치려는 순간, 아이슬란드 팬들이 “우오오오~”라며 함성을 질렀다. 손을 멈추고 그라운드를 보니 땅볼 크로스가 들어갔다. 트라우스타슨이 미끄러지면서 뻗은 발에 맞은 공이 오스트리아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기사를 다 뜯어고쳐야 하는데, 멍하니 아이슬란드의 환희를 쳐다보기만 했다.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기쁠까? 얼마나 행복할까? 아이슬란드 축구의 새 역사가 만들어지는 순간을 직접 봤다. 유로2016 종료 후, 아이슬란드인을 만날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들과 교감할 최고의 이야깃거리가 생겼다. “저, 그때 스타드 드 프랑스에 있었어요.” 국내에서도 유로2016 관련 기사가 많다. 기사와 댓글 들은 ‘재미없다’라는 반응이다. 경기 수준이 낮아졌다는 불평이 많다. 사실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한껏 웅크려 버티면서 세트피스와 역습만 노리는 팀들이 전보다 많아졌다. 실력이 부족하면 그럴 수밖에 없다. K리그의 작은 팀, 월드컵의 한국이 그렇다. 유로 본선에 출전한 인구 33만 국가에 “왜 화끈하고 재미있는 공격 축구를 하라”고 요구할 수 없다. 축구를 즐기는 방법은 개인 취향의 영역이다. 정답이 없다. 축구를 분석하거나 읽으며 재미를 느끼는 팬도 많다. 그러나 국가대항전은 관찰보다 공감이 어울린다. 한 시즌 40~50경기를 치르는 클럽 축구에는 과학이 끼어들 틈이 있겠지만, 월드컵, 유로, 아시안컵에는 국가, 국기, 국적이 전부다.  영국 축구 계간지 ‘더블리자드’ 편집장 조나단 윌슨은 메이저 대회에서 수비에 치우치는 원인을 이렇게 설명했다. “클럽 축구에서는 한 경기 져도 바로 다음 주에 만회할 수 있다. 빅클럽 팬들도 10경기 중 7~8경기에서 좋은 경기력을 나오면 만족한다. 메이저 대회는 다르다. 훈련시간이 짧으니 수비만 맞추고 출전한다. 대패하면 그 기억이 영원히 지속된다.” 국가대항전이라는 목적어에 ‘읽다’가 아니라 ‘느끼다’라는 술어가 어울린다. 읽으면 따분하지만, 느끼고 공감하면 흥미진진해진다. 이곳에서 아이슬란드가 치른 셋 중 두 경기를 봤다. 그들이 경기에서 남긴 숫자는 지루했지만, 투지와 열정은 드라마 그 자체였다.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1만 명(전체 인구 3%)이 한 장소에서 기뻐서 날뛰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숙소로 가는 길에서 본 오스트리아 팬들의 실망감도 절절하게 다가왔다. 아이슬란드 대표팀에 “안티풋볼 좀 그만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오스트리아, 스웨덴, 터키 팬들에게 “패스 성공률과 슈팅 시도를 각각 15%씩 높여야 하겠더군”이라며 훈수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선수들은 국가를 대표해서 뛰고, 팬들은 같은 옷을 입고 그들을 응원한다. 국가가 그들을 하나로 묶는다.  유로2016 조별리그 10경기를 현장에서 봤다. 매 경기에 출전하는 대표팀과 팬들, 그들을 바라보는 프랑스 사람들은 모두 웃고 있었다. 즐거워 보였다. 경기가 있을 때마다 파리 에펠탑 팬존에는 많은 팬들이 모여 유로를 즐긴다. 맥주를 마시며 승패에 희비를 드러낸다. 유로를 가슴으로 느끼는 모습이 좋았다. 곧 유로2016의 16강 일정이 시작된다. 조별리그처럼 토너먼트도 따분하지 않을 거다. 느끼면 그렇다. 글=홍재민,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포포투

2016.02.26

[perfect.xi] 이천수가 상대한 라리가 올스타

[포포투] 지금은 무한도전 ‘못친소’에‘ 나와 입담을 과시하는 연예인으로 활동하지만, 이천수는 한국인 최초로 스페인프리메라리가에 진출한 이력의 축구 스타다. 스페인에서 뛰던 2003-05년이 그의 축구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선수들을 상대했던 시절이다. 이천수의 <PERFECT XI>이 라리가의 스타들로 가득한 이유다. 레알소시에다드 동료였던 사비 알론소는 이천수와 함께 벤치를 지켰던 관계로 명단에 들지 못했다는. GK 산티아고 카니자레스 “카니자레스 앞에서는 페널티킥을 차도 프리킥을 차는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위협적이었다. 뭔가 압도적인 에너지가 느껴는 골키퍼였다” CB 카를레스 푸욜 “타고난 수비수. 끈질기다. 포기하지 않는다. 즐기면서 수비하는 게 이런 거구나 싶다. 정말 잘했다. 푸욜은 잘 때도 수비할 것 같다. 상대하기 싫은 스타일이다” CB 이반 코르도바  “지금 생각해도 무섭다. 키가 작은데 빠르고 힘이 좋다. 점프력도 좋아서 제공권에서도 크게 밀린다는 생각이 안 든다. 지금까지 내가 상대했던 수비수 중에 가장 뛰어났다”  LB 지오반니 판 브롱크호스트  “왼쪽 풀백 자리에서 공을 가장 잘 찼던 선수로 기억한다. 공격수처럼 공을 찼던 수비수다. 함께 뛰면 편안함을 주는 선수다. 상대하면 당연히 힘들겠지. 그리고 일단 나에 대한 칭찬을 많이 해줬다” RB 미첼 살가도  “열심히 뛰던 선수다. 화려한 맛은 없지만 안정적이고 실수가 적었다. 포지션상 나와 맞대결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쉽게 상대하기 어려웠다” CM 지네딘 지단  “세계가 인정하는 주장이다. 카리스마가 대단하다. 누구도 지단에게 대들 수 없다. 경기에 미치는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크다. 홀로 21명을 지배한다. 그렇게 경기를 혼자 컨트롤하는 선수를 본 적이 없다” CM 클로드 마케렐레  “세계 최고의 스테미나 플레이어라고 하면 어떨까? 정말 많이 뛴다. 미친 듯이 뛴다. 저기 있었는데 갑자기 내 앞에 와 있다. 마케렐레 같은 수비형 미드필더가 있으면 수비는 무조건 안정적일 거다” LM 루이스 피구  “피구는 못 하는 게 없다. 빠르고 돌파도 잘한다. 개인기가 좋은데 패싱력도 있어 팀플레이에 능숙하다. 슈팅력도 뛰어나다. 전체적인 능력치가 월드클래스였던 선수다” RM 데이비드 베컴  “이렇게 프리킥을 아름답게 잘 차는 선수는 본 적이 없다. 베컴에게 프리킥으로만 많은 골을 허용했던 기억이 난다. 킥 하나만 완벽하게 해도 레알에 갈 수 있다는 걸 베컴이 보여줬다” FW 호나우두  “내가 지금까지 본 선수 중 최고의 스트라이커다. 흠잡을 데가 없다. 몸 한 번 흔들면 수비가 속는다. 특별한 움직임을 가졌던 선수다. 따라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FW 호나우지뉴  “막말로 ‘미친X’이다. 축구 역사 최고의 테크니션이라는 말도 아깝지 않다. 뭔가 대단히 역동적인 건 아니었는데 화려했다. 공이 발에 늘 붙어 있었다. 축구화에 자석을 넣은 것 같은 느낌이랄까” 교체선수 1. 박지성  “혹자는 내가 지성이 형보다 축구를 잘했다고 하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2. 고종수  “사람들은 나와 종수 형을 비슷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공을 정말 잘 찼다는 거” 3. 이천수  “내 이름이 빠지면 좀 서운할 것 같다. 그래도 한국인 최초로 스페인에 진출했으니 자격이 있지 않을까?” 감독 김정남 “국내외, 대표팀에서 많은 감독들과 함께했다.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다. 그 중에서도 김정남 감독님과 함께하면서 가장 마음 편히 축구를 했다. 내가 기량을 발휘하도록 많이 배려해주셨다. 전술적인 면, 용병술 등도 뛰어난 지도자셨다” 글=정다워, 그래픽=임진성, 사진=FAphotos, Gettyimages/이매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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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Andy Mitten] 유로2016 최고 히트상품은 아이슬란드였다. 창백한 피부의 1만 팬들이 연출하는 ‘바이킹 클랩’은 전 세계 축구 경기장으로 퍼질 조짐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미 아이슬란드와 친숙했다. 에이두르 구드욘센(37, 몰데) 덕분이다. 인구 33만 국가에서 UEFA챔피언스리그 우승자를 배출하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아버지와 교체되어 A매치에 데뷔했고, 유로 8강전에서 마지막 A매치를 치른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올해 37세인 구드욘센은 여전히 현역으로 뛴다. 바르셀로나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구드욘센과 만났다. 이곳은 티에리 앙리가 아주 좋아했던 레스토랑이다. 구드욘센은 의자에 앉아 <포포투> 독자들의 질문에 직접 대답했다. (편집자 주: 본 기사는 <포포투> 한국판 3월호에 게재된 내용 중 일부입니다) ### 아이슬란드 국가대표였던 아르노르 구드욘센의 아들이다. 환경이 기회를 줬다고 생각하는가? (Tom Collins, 글로체스터)내가 축구 선수의 아들이라서 축구 선수의 길을 밟은 건 아니다. 하지만 축구는 내 유전자나 다름없다. 핏속에 축구가 들어있다. 내가 축구공을 처음 봤을 때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세 살 때였던 것 같다. 그때 프로축구선수가 될 거라고 결심했다. 17세 때 PSV에인트호벤에서 호나우두(브라질)와 함께 뛰었다. 그에게서 배운 게 있었다면? (Andre Dutra, 트위터)‘정말 스페셜한 선수와 함께 뛰는구나’라는 생각이 바로 딱 들더라. 당시 그는 열아홉 살이었다. 나보다 두 살 위였지만 호나우두는 이미 성인이었다. 호나우두는 최고 스피드에서 헛다리를 짚고 트위스트와 턴을 구사했다. 평범한 선수들, 어느 정도 한다는 선수들도 그런 기술을 구사하면 속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말 멈출 수가 없는 선수였다. '따라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할 차원이 아니었다. 함께 뛰어본 최고의 스트라이커는? (Kingiesta, 트위터)정말 좋은 선수들과 함께 호흡을 맞췄다. 지미 플로이드 하셀바잉크, 지안프란코 졸라, 디디에 드로그바, 에르난 크레스포, 사무엘 에투, 리오넬 메시, 호나우지뉴 그리고 호나우두. 티에리 앙리도 있다. 혹시나 언급하지 않은 선수가 있다면 미리 사과한다. 함께 뛰면서 가장 좋은 호흡을 보였고 즐거웠던 선수는 바로 지미 플로이드 하셀바잉크였다. 우리는 스타일이 달랐지만 정말 손발이 척척 맞았다. 당신 아버지(안더레흐트)가 1984년 토트넘과 UEFA컵 결승전에서 승부차기 실축을 했다. 그로부터 26년 후에 아들인 당신은 토트넘에 입단했다. (Richie French 에섹스)그 때는 너무 어려서 몰랐다. 나중에 동영상을 보고 알았다. 다른 선수들도 실축했지만, 아버지가 마지막 키커였다는 게 문제였다. 사람들은 마지막 키커만 기억한다. 토트넘 입단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아버지는 정말 좋은 선수였다. 각 팀당 외국인 선수는 딱 세 명만 보유할 수 있는 시기였다. 그만큼 해외 진출이 어려웠다. 20년 동안 프로로 뛰었고, 벨기에에서는 득점왕, MVP도 하셨다. 34세에는 스웨덴 최고 외국인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PSV에인트호벤에서 다쳤다. 그때 선수 생활이 끝날까 봐서 걱정을 많이 했을 거 같다. (Mohamed 트위터)사실 의사가 ‘더 프로 생활을 할 수 없을지 모른다'라고 했을 때 겁이 났다. 뛸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실하지 않은 2년이었다. 그저 시간이 필요했다. 발목이 부러졌고, 뼈 성장 장애 합병증도 있었다. 수술을 총 일곱 번 했다. 1996년 4월 에스토니아에서 열린 A매치 데뷔전 생각나는가? 선발로 뛰었던 아버지와 교체 투입됐다. 그때 기분이 어땠는가? (Darren Finkle 페이스북)아버지와 같은 경기에서 뛰었다는 것 자체가 정말 대단했다. 교체 투입될 때, 아버지가 내 볼에 키스해줬다. 절대로 잊지 못한 순간이었다. 아버지가 나보다 더 초조해 보였다. 6주 후에 홈에서 A매치가 있었다. 아버지는 우리가 함께 선발출전하기를 원했지만 내가 다치고 말았다. 아버지는 내가 다치고 난 뒤에 2년이나 더 선수 생활을 했다. 우리는 몇 년은 함께 뛸 수 있었는데 아쉽다. 2004년 조제 모리뉴 감독이 처음 왔을 때 다들 당신을 내보낼 거로 예상했는데, 결국 당신은 첼시의 우승에 크게 공헌했다. 처음 그와 만났을 때 무슨 이야기를 하든가? (Adrian Evans 왓퍼드)모리뉴가 오고 나서 하루인가 지난 때였다. 피터 케니언 단장이 내게 전화를 걸어 “새 감독이 면담하고 싶어 해”라고 했다. 조제가 내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너의 새 감독이다. 내가 왔다고 해서 팀을 떠나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네가 여기서 최선을 다해주기를 원한다. 시즌 개막까지 몸을 잘 만들어 달라”라고 했다. 그게 전부였다. 2000년 처음 첼시에 왔을 때와 2006년 떠났을 때, 차이점은 무엇이었는가? (Pat Whittle, 이메일)선수단 수준은 큰 차이가 없다.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은 정말 사랑스러운 성격이자 좋은 지도자다. 모리뉴 감독은 선수들을 능숙하게 다뤘다. 가장 핵심은 선수단의 나이였다. 어느 정도 경험을 가진 선수들도 있었다. 처음 첼시에 왔을 때 지안루카 비알리 감독 아래였는데 경험 많은 선수들이 많았다. 바르셀로나에 가려고 레알 마드리드의 제안을 무시했다고 들었는데? (Alan Fitch 스투르포트)가장 먼저 내게 관심을 가진 스페인 클럽이 바로 레알 마드리드였다. 하지만 레알은 회장 선거 중이었고 감독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관심이 의심스러웠다. 스페인에서는 어떻게 일처리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바르셀로나는 달랐다. UEFA챔피언스리그에서도 우승을 막 했던 때다. 그때 결심했다. "그래 이 팀으로 가자. 바르셀로나는 1년 내내 내게 제안해왔잖아. UEFA챔피언스리그에서 우리가 그들을 탈락시켰을 때부터 말이야.” 헨리크 라르손의 대체자로 바르셀로나에 왔다. 그런 큰 기대감이 어떤 식으로든 부담으로 작용하지는 않았는가? (Tomas Hedberf 페이스북)사실 처음에는 누군가를 대체한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바르셀로나로 온 뒤 내가 라르손처럼 북유럽 출신인 데다가 같은 등번호를 받았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나는 벤치보다는 경기에서 승리하는 골을 넣고 싶었다. 바르셀로나에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해보니 라르손도 그렇게 얘기했다고 했다. 그게 바로 바르셀로나 사람들이 라르손을 기억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큰 부담은 없었다. 사실 바르셀로나는 입단 자체가 큰 부담이었다. 조제 모리뉴와 펩 과르디올라를 모두 경험했다. 두 감독의 유사점과 차이점은 무엇인가? (Geraint Matthews 트위터)꼼꼼한 일 처리가 닮았다. 축구적 관점에서 보면 조제는 더 수비적이다. 그렇다고 수비적인 마인드는 아니다. 상대 분석이 더 수비적이라는 뜻이다. 과르디올라는 팀플레이에 꽂혀 있다. 성격은 완전히 다르다. 과르디올라는 신중하다. 대립을 싫어한다. 모리뉴는 좀 더 공격적이다. ‘네가 원한다면 와서 재주껏 가져가라’는 식이다. 대립이나 논란도 즐기는 것 같다. 과르디올라는 그런 대화 자체를 피한다. 프랭크 램퍼드, 리오넬 메시, 가레스 베일과 함께 뛰었다. 그들이 이런 경지에 오를 줄 알고 있었는가? (Kai Jones 카디프)해리 케인. 내 생각보다 정말 더 크게 성장했다. 예전 1군에서 함께 훈련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저 친구는 잘 모르겠어”라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도 잘 몰랐다. 램퍼드도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좋은 선수가 되었다. 첼시가 처음 그를 영입할 때 ‘좋은 선수이기는 하지만 1,100만 파운드짜리는 아니야’라고 생각했다. 램퍼드는 매 시즌 성장했다. 경기에 임하는 태도도 특별했다. 메시에 관해서는 그 누구도 실력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았다. 아주 어렸을 때는 의심하는 사람이 있긴 했다. 왜냐하면 말수가 너무 적었다. 중국에는 왜 갔는가? 현역 생활을 더 연장하고 싶어서? (Jamie Lay 서튼)시즌이 끝나고 볼턴과 계약하고 싶었지만 조건이 맞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중국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솔직하게 이야기해보자. 중국에 가면 큰돈을 벌 수 있다. 물론 축구를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크기는 했다. 지난 시즌 중국에서 14경기에 출전했는데, 매 경기 만원이다. 분위기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뜨겁다. 사실 내게 맞는 팀은 아니긴 했다. 레프트윙으로도 뛰어야 했으니까. 공수를 오가고 있으면 가끔 ‘내가 이러기엔 너무 늙었잖아!’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버지처럼 당신도 아들과 아이슬란드 대표팀에서 함께 뛸 기회가 올까? (Robert Stead 레스터)그럴 수는 없을 거다. 유로2016 후에 나는 아이슬란드 대표팀에서 은퇴할 생각이다. 나는 여전히 축구를 사랑한다. 매일 훈련하고 싶다. 서른세 살 때 다리가 두 번이나 부러졌다. 사람들은 '이제 복귀하지 못할 거야'라고 했다. 하지만 내 마음이 “경력을 이런 식으로 마무리하지 않아”라고 말했다. 그 이후로 4년이나 뛰고 있다. 라이언 긱스만큼 오래 하지는 못하겠지만, 이제 2년 남았다. #팩트 파일-본명: 에이두르 스마리 구드욘센-생년월일: 1978년 9월 15일-출생지: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클럽(리그 기준): 1994년 발루르 17경기(7골); 1995-97 PSV 15경기(3골); 1998 KR 레이캬비크 6경기; 1998-2000 볼턴 원더러스 73경기(26골); 2000-06 첼시 261경기(78골); 2006-09 바르셀로나 112경기(18골); 2009-10 모나코 11경기; 2010 토트넘 홋스퍼(임대) 14경기(2골); 2010-11 스토크시티 5경기; 2011-12 AEK 아테네 14경기(1골); 2012-13 체르츨 브뤼헤 14경기(7골); 2013-14 클럽 브뤼헤 49경기(7골); 2014-15 볼턴 24경기(5골); 2015 스좌장 14경기(1골); 2016~ 몰데 11경기(2골)-국가대표팀: 1996~2016, 아이슬란드 88경기 26골-우승경력: KNVB컵 1995-96; 에레디비지에 1996-97; 프리미어리그 2004-05, 2005-06리그컵 2004-05; 라리가 2008-09; 코파델레이 2008-09; UEFA챔피언스리그 2008-09; UEFA 슈퍼컵 2009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포포투
한국 축구의 전설 김병지가 그라운드에 작별을 고했다.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 같았던 피치 위에서의 도전이 마흔여섯 여름에 막을 내렸다.  프로 무대에 첫발을 내딛은 순간부터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은퇴를 선언했던 마지막까지, 김병지가 특별하지 않았던 순간은 없었다. 언젠가부터 그의 역사는 곧 K리그와 한국축구의 역사였다. 누구도 쉽게 넘볼 수 없는 기록의 벽을 세운 건 더이상 새삼스럽지도 않은 이야기다. <포포투>는 고민했다. 김병지는 대중에게 친숙한 축구스타다. 26년 동안 자신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공개한 이 남자에게 던질 수 있는 새로운 질문이란 게 무얼까. 고민 끝에 차라리 그에게 요청하기로 했다. 26년 프로 인생을 집약한 ‘특강’을 들려달라고. 그러니까 이제 곧 펼쳐질 이야기들은 9월 18일로 예정된 공식 은퇴식 전, 김병지와 함께했던 마지막 현장 수업이다. 후배들을 향한 조언으로 시작한 이야기지만, 누구에게나 울림이 있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전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시라.  <...1편(김병지의 마지막 특강 ①재테크와 루틴)에서 이어집니다: > ################## # ‘축구만 아는 바보’라고요? “아니, 축구에 집중하기도 모자랄 판에?” 제 관심사가 다양한 분야로 뻗어있는 걸 두고,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묻곤 합니다. 맞아요. 운동에 집중하는 자세는 축구선수 제1의 덕목입니다. 축구 뿐만 아니라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예요. 한 우물을 깊게 파는 이들에게 ‘장인’이라는 이라는 타이틀이 괜히 붙는 게 아니지요. 그런데 우리가 평생 축구선수로만 사는 건 아닙니다. 26년을 뛰어왔던 저만 해도 결국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 생기잖아요.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인생의 깊이가 더해지는 건 시야의 넓이에 따른 것이라고요.  사실 축구(운동)선수들은 다른 일을 하는 또래에 비해 사회적으로 성숙이 더딘 편입니다. 주로 보호받고 관리받는 입장인데다 앞만 보고 질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편협하게 살지 않으려면, 또 언젠가 발을 내딛게 될 사회에서 시행착오를 줄이려면, 폭넓은 교제를 하는 게 좋습니다. 이때 교제 대상은 사람일 수도 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책이 될 수도 있고 뉴스가 될 수도 있겠지요. 특히 책은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를 간접적으로나마 알게 해주는 좋은 도구입니다. 고전부터 인문학, 문학, 자기계발서에 이르기까지, 읽어서 나쁜 책이란 거의 없습니다. 저는 <화폐전쟁>이라는 5권짜리 두꺼운 책도 정독했어요. 일반인 중에도 이 책을 끈기있게 읽는 이가 많지 않다는 얘길 듣고 내심 뿌듯했습니다. 이외수 작가의 책도 신작이 나올 때마다 빠짐없이 읽습니다.  신기한 건 어느 시점이 되면 이 모든 감성과 지혜가 내가 하는 일과도 연결이 된다는 겁니다. 무엇이든 관심있는 분야를 섭렵하다 보면 유관 학문 혹은 그 분야로 지평이 계속 확장되는 거죠. 이런 과정에서 통섭의 기쁨도 알게 되고 통찰도 생긴다고 봅니다. 사람을 사귈 때도 마찬가지예요.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들, 방향성이 맞는 친구를 편견없이 사귀다 보면 인생이 훨씬 풍성해집니다. 저는 지금 축구에 대해 깊이 있는 얘기를 할 수도 있지만, 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 ‘브렉시트’에 대한 토론을 할 수도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축구에 집중하는 게 가장 중요하지만 세상사에 두루두루 관심을 갖는 연습도 해보세요. 나를 둘러싼 세계가 훨씬 흥미로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겁니다. # 의미없는 시간은 없다 은퇴를 즈음해 지나온 길을 돌아봤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앞만 보고 달려왔으니 그간의 걸음은 정상을 향해 쭉 뻗은 직선일 것 같잖아요? 아니었습니다. 등산으로 치면 오르막내리막 능선을 몇 번이나 탔더라고요. 왼쪽 샛길로 빠지기도 했고 오른쪽으로 가다 검은 숲에 갇힌 적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2002월드컵 때의 좌절을 꼽을 수 있겠죠. 흔히 슬럼프라고들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당시 제 나이가 32세였어요. 주변 사람들 다 제가 충격으로 은퇴할 줄 알았을 거예요. 대표팀 수문장 경쟁에서 뒤쳐진 듯한 인상이었기 때문이죠. 많은 분들이 아시듯 월드컵대표팀에 합류하는 과정에서 히딩크 감독님과 신경전이 있었고, 월드컵에서 결국 한 경기도 뛰지 못했으니까요. 그 사연을 풀자면 역시 지면이 모자랍니다. 일단 월드컵대표팀의 일원으로서는 정말 행복했습니다. 한국축구 역사상 첫 월드컵 4강이라는 현장에 함께 했고, 온 국민이 그토록 축구에 열광하고 많은 사랑을 보내준 것에 감사했던 마음이었어요. 팀원으로서도 지켜야 할 자리는 명확했기 때문에 이기심은 넣어두었습니다.  딱 한 번 히딩크 감독님이 원망스러웠던 적이 있긴 합니다. 3/4위전에서 혹 출전 기회를 얻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거든요. 역시나였죠.  때때로 마지막 터키전에 출전했으면 어땠을까 상상해 봅니다. 그랬다면 모두에게 해피엔딩이었을 겁니다. 저는 개인적인 아쉬움을 씻어냈을 거고, 히딩크 감독님과의 갈등이 이토록 오래 회자되지도 않았을 거예요. 요즘 ‘영고’라는 말을 많이 쓰더군요. 영원한 고통을 뜻한다면서요. 해피엔딩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칼스버그컵(골문 비우고 드리블)과 함께 ‘영고’ 대상이 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어쨌든 중요한 건 당시 상처일 수도 있었던 경험을 나름대로 소화했다는 거예요. 잃는 게 생기면 얻는 것도 있는 게 인생이잖아요. 그때 깨달은 게 있어요. 그라운드 위의 시간은 매 순간 소중하다는 사실이죠. 국내에서 열린 월드컵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 건 아쉽지만, K리그에서만큼은 최고의 골키퍼가 되겠다고 결심했어요. 많은 선수들이 좌절이나 실패를 경험하면 문제 원인을 외부로 돌립니다. 감독과 안맞는다거나 환경이 좋지 않다거나 하는 식이죠. 그런데 저는 문제점을 자신에게서 찾습니다. 칼스버그컵은 내 실수인 게 맞고, 감독과의 대립은 불필요한 것이었죠. 자존감이 무너지는 경험이었지만, 이후에는 그 어느 감독님과도 불협화음이 없었습니다. 지도자들과의 관계, 고참으로서의 역할, 경기력 유지 등에 대해 많은 교훈을 얻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때의 좌절감이 골키퍼 기록, K리그 역사를 만든 셈이네요. 당시엔 정말 힘든 시간이었지만, 지나고 보면 인생의 궤적에서 의미없는 시간은 없다는 진리를 확인하게 됩니다.  # 소나기가 쏟아질 땐 그냥 맞는 것도 괜찮다 살다 보면 통제불가의 영역에 들어설 때도 있습니다. 내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환경에 놓일 때입니다. 축구선수에게는 부상이 그런 상황이겠죠.  일단 부상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최선입니다. 하지만 부상이 발생했다면, 가능한 빨리 긍정의 기운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상 사실이나 환경은 어찌할 수 없지만 마음은 내가 조절할 수 있는 영역이니까요. 긍정적인 마음으로 재활에 임하는 게 중요합니다. 선수라면 누구나 부상에 대한 공포와 재활의 어려움을 알고있습니다.  재활에 관해 흔한 착각 중 하나가 ‘시간이 지나면 낫는다’인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또 경험담을 꺼내봅니다. 2008년 저는 허리디스크 수술로 심각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주치의가 척추에서 척출한 디스크 조각들을 보여주면서 ‘선수 생활은 포기하라’고 하더군요. 의학적으로는 그 진단이 맞았어요. 그런데 사람의 의지라는 게 참 신기합니다. 의학적, 과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힘을 만들거든요. 당시 수술 후 병상에서 2주 동안 꿈쩍도 안했어요. 보통 허리 디스크 수술을 하고 3, 4일이면 조금씩 움직이라고 합니다. 주위 근육이 붙을 수 있도록 하는 조치예요.  제 생각은 조금 달랐습니다. 근육보다 상처 관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운동선수니까 근육은 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어요. 하지만 상처가 제대로 아물지 않거나 덧나면 나중에 더 심각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본 거지요. 움직이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했지만 결국 참아냈습니다.  종종 TV에서 암이나 불치병을 극복한 분들의 사연이 나옵니다. 주인공들은 공통적으로 ‘지금 생은 덤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말합니다. 저도 그래요. 인내로 극복해 내긴 했지만, 사실은 그때부터 늘 은퇴를 염두에 두고 살았습니다. 그때 나이가 서른여덟이었는데, 그로부터 7-8년을 더 뛰었으니 덤 치고는 꽤 오래 연장한 셈이지요.  하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갑자기 내 인생에 비가 쏟아지는 것 같은 날도 있어요. 비를 피하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보면 고인물이 바짓단에 튈 수도 있고, 어깨가 젖을 수도 있습니다. 피하느라 애쓴 게 무색해지는 상황이죠. 쏟아지는 비를 그냥 맞는 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상황을 바꾸지 못할 땐 마음만이라도 긍정적으로 바꿔봅시다. 비는 언젠가 그치기 마련이니까요.  # 마지막을 준비하는 시간에 대하여 오래전부터 은퇴를 염두에 두고 살았던 저는 사실 특수한 경우겠지요. 많은 선수들이 불시에 은퇴라는 현실에 직면합니다. 스스로 축구화를 벗는 시간을 택할 수 있는 그림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여러 변수와 환경에 밀리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놓일 때, 거기가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타의로 축구를 그만두게 됐다면 더더욱이요. 자신의 인생을 타인이 갉아먹게 두지 말라는 뜻입니다. 저를 보세요. 고등학교(알로이시오고) 생활, 직장 생활 모두 정상적으로 축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학교에서는 공부를 해야 했고, 직장 생활을 위해서는 자격증을 따야 했어요. 그래도 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속한 환경은 타의에 가까웠지만, 거기서 최선을 다한 건 자의에 따른 선택이었죠. 그게 지금의 저를 만든 시간들이었습니다. 당장은 하찮게 보이는 일이 의외로 직업적 성향에 맞는 천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 성공할 확률이 높은 법입니다. 속된 말로 ‘얻어걸린다’고도 하잖아요. 호떡집으로 ‘대박’ 난 분들의 성공담을 들어보세요. 같은 맥락입니다. 축구선수로 성공하지 못했다고 해서 좌절하지 말고, 축구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을 다른 일에도 적용해 보길 권합니다.   자, 제 얘기는 이쯤에서 줄일까 합니다. 다 싣지 못한 사연들이 있지만, 26년 장수 노하우의 핵심은 모두 전한 것 같으니 아쉬운대로 정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못다한 이야기들은 또 다른 모습으로 풀 기회가 있을 거라 믿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그라운드에서 함께 해준 동료들과 선후배 선수님들, 변함없는 사랑과 애정으로 응원해주신 팬 여러분께 거듭 감사드립니다.  구술=김병지, 정리=배진경, 사진=이연수, FAphotos # 해설가? 비즈니스맨? 김병지의 새 인생은… <포포투> 9월호가 나올 즈음이면 김병지도 돌아온다. 선수가 아닌 SPOTV 해설가로서다. 8월 중순부터 순차적으로 개막하는 유럽리그 중계석에 앉는다. EPL과 라리가 주요 경기 해설을 두루 맡기로 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골키퍼 출신이라는 이력이 해설가로서는 어떤 차별성을 갖게 될까? “축구는 골 상황에서 가장 많은 일과 관계성이 생깁니다. 지금까지는 슈팅하는 선수 중심의 해설이 주를 이뤘지만 저는 골키퍼와 수비수의 판단과 움직임에서 포인트를 찾겠죠. 새로운 시야를 제공할 수 있을 겁니다.”또 하나, 그의 이름을 딴 스포츠문화진흥원으로 사단법인 등록도 진행하고 있다. 축구 뿐만 아니라 체육, 문화 전반에 걸친 활동을 계획 중이다. 재활센터 오픈과 축구아카데미 설립도 그 일환이다. 수원에 세울 재활센터는 이미 공사에 들어갔다. “멀티 플레이어라고 보시면 됩니다. 해설이든 사회 활동이든 다 잘하고하고 싶은 마음이고요.” 지도자 생활에는 뜻이 없을까. 골키퍼 출신 감독이 되는 일도 매력적일 텐데? “감독이 되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전에 공부도 더하고 뭔가 좀 만들어야겠죠.” 어쩌면 머지 않은 미래에 오프라 윈프리처럼 이름만으로도 많은 컨텐츠를 파생하는 인물, 김병지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우리가 봐왔던 김병지라면, 충분히 가능한 그림이다.  김병지 올스타전, 울산 OB vs 포항 OB는 어때? 김병지는 지난 18일 울산과 포항의 153번째 동해안더비를 통해 공식 은퇴식을 가졌다. 내친김에 그에게 현역 시절 함께 뛰었던 양팀 OB멤버들을 모아 올스타전을 상상해달라고 요청했다. 전반전은 울산에서, 후반전은 포항에서 뛴다는 단서만 달았다. 청산유수 언변을 자랑하던 김병지였지만, 선후배들의 이름을 선택하는 데는 고민이 많았다. 그가 써낸 라인업은 아래와 같다. [울산] -------------------김현석 --------------------------- 정종수---------------------송주석--------------김병지 ------------------유상철------윤덕여----------------- 신홍기---------최영일--------박정배----------최강희 --------------------최인영(GK)----------------------- 감독: 김호 “이팀의 컬러는 상대 왼쪽에 설 하석주의 플레이를 죽이는(?) 거다. 내가 오른쪽에서 뛸 거니까! 윤덕여 선배를 미드필더로 올린 건 죄송하지만 충분히 이해해주실 거다.” [포항] -------------------최순호------------------------- --------------------------황선홍-------------------- ---박태하--------------------------------------고정운---- 하석주----------------이민성-------------------박경훈 ----------김성근--------홍명보--------산토스-------- --------------------김병지(GK)----------------------- 감독: 이회택 “이 팀은 뭐, 감독 직함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거다. 쓰고 보니 그냥 국가대표급 라인업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