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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4

[홍재민의 축구話] 유로를 읽지 말고 느껴주세요

[포포투=파리(프랑스)] 내용과 결과. 재미와 승리. 분석과 공감. 축구 안에서 인과관계이거나 아예 동떨어져 있거나 하는 것들이다. 이틀 전(22일) 툴루즈와 보르도를 거쳐 파리로 돌아왔다. 몽파르나스 기차역에서 곧바로 생드니에 있는 스타드 드 프랑스로 갔다. 아이슬란드와 오스트리아의 F조 3차전 현장이었다. 지하철이 찜통이다. 열린 창문으로 지하 냄새가 나는 바람이 들어왔다. 아이슬란드 팬들이 천정을 두들기며 응원 구호를 고래고래 외쳤다. 오스트리아 팬들은 빙긋이 웃으며 땀을 흘렸다. 경기 중 서울에 있는 동료와 문자를 주고받았다. 아이슬란드를 주제로 ‘한국 축구가 배워야 할 궁극점’이라며 서로 낄낄댔다. 전반 18분에 선제골을 넣었다. 롱스로인, 살짝 떨구고, 세컨드볼을 잡아 슛, 골인이다. 이 얼마나 간결한 득점 패턴인가? 메이저 대회에 나갈 때마다 ‘세트피스를 노려야 한다’라고 각오를 다지는 대한민국이 생각났다. 1-1 동점 상태로 후반 추가시간이 시작되었다. 아이슬란드 쪽은 난리가 났고, 오스트리아 쪽은 망연자실이다. 기사 작성을 마치려는 순간, 아이슬란드 팬들이 “우오오오~”라며 함성을 질렀다. 손을 멈추고 그라운드를 보니 땅볼 크로스가 들어갔다. 트라우스타슨이 미끄러지면서 뻗은 발에 맞은 공이 오스트리아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기사를 다 뜯어고쳐야 하는데, 멍하니 아이슬란드의 환희를 쳐다보기만 했다.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기쁠까? 얼마나 행복할까? 아이슬란드 축구의 새 역사가 만들어지는 순간을 직접 봤다. 유로2016 종료 후, 아이슬란드인을 만날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들과 교감할 최고의 이야깃거리가 생겼다. “저, 그때 스타드 드 프랑스에 있었어요.” 국내에서도 유로2016 관련 기사가 많다. 기사와 댓글 들은 ‘재미없다’라는 반응이다. 경기 수준이 낮아졌다는 불평이 많다. 사실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한껏 웅크려 버티면서 세트피스와 역습만 노리는 팀들이 전보다 많아졌다. 실력이 부족하면 그럴 수밖에 없다. K리그의 작은 팀, 월드컵의 한국이 그렇다. 유로 본선에 출전한 인구 33만 국가에 “왜 화끈하고 재미있는 공격 축구를 하라”고 요구할 수 없다. 축구를 즐기는 방법은 개인 취향의 영역이다. 정답이 없다. 축구를 분석하거나 읽으며 재미를 느끼는 팬도 많다. 그러나 국가대항전은 관찰보다 공감이 어울린다. 한 시즌 40~50경기를 치르는 클럽 축구에는 과학이 끼어들 틈이 있겠지만, 월드컵, 유로, 아시안컵에는 국가, 국기, 국적이 전부다.  영국 축구 계간지 ‘더블리자드’ 편집장 조나단 윌슨은 메이저 대회에서 수비에 치우치는 원인을 이렇게 설명했다. “클럽 축구에서는 한 경기 져도 바로 다음 주에 만회할 수 있다. 빅클럽 팬들도 10경기 중 7~8경기에서 좋은 경기력을 나오면 만족한다. 메이저 대회는 다르다. 훈련시간이 짧으니 수비만 맞추고 출전한다. 대패하면 그 기억이 영원히 지속된다.” 국가대항전이라는 목적어에 ‘읽다’가 아니라 ‘느끼다’라는 술어가 어울린다. 읽으면 따분하지만, 느끼고 공감하면 흥미진진해진다. 이곳에서 아이슬란드가 치른 셋 중 두 경기를 봤다. 그들이 경기에서 남긴 숫자는 지루했지만, 투지와 열정은 드라마 그 자체였다.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1만 명(전체 인구 3%)이 한 장소에서 기뻐서 날뛰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숙소로 가는 길에서 본 오스트리아 팬들의 실망감도 절절하게 다가왔다. 아이슬란드 대표팀에 “안티풋볼 좀 그만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오스트리아, 스웨덴, 터키 팬들에게 “패스 성공률과 슈팅 시도를 각각 15%씩 높여야 하겠더군”이라며 훈수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선수들은 국가를 대표해서 뛰고, 팬들은 같은 옷을 입고 그들을 응원한다. 국가가 그들을 하나로 묶는다.  유로2016 조별리그 10경기를 현장에서 봤다. 매 경기에 출전하는 대표팀과 팬들, 그들을 바라보는 프랑스 사람들은 모두 웃고 있었다. 즐거워 보였다. 경기가 있을 때마다 파리 에펠탑 팬존에는 많은 팬들이 모여 유로를 즐긴다. 맥주를 마시며 승패에 희비를 드러낸다. 유로를 가슴으로 느끼는 모습이 좋았다. 곧 유로2016의 16강 일정이 시작된다. 조별리그처럼 토너먼트도 따분하지 않을 거다. 느끼면 그렇다. 글=홍재민,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포포투

2016.02.26

[perfect.xi] 이천수가 상대한 라리가 올스타

[포포투] 지금은 무한도전 ‘못친소’에‘ 나와 입담을 과시하는 연예인으로 활동하지만, 이천수는 한국인 최초로 스페인프리메라리가에 진출한 이력의 축구 스타다. 스페인에서 뛰던 2003-05년이 그의 축구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선수들을 상대했던 시절이다. 이천수의 <PERFECT XI>이 라리가의 스타들로 가득한 이유다. 레알소시에다드 동료였던 사비 알론소는 이천수와 함께 벤치를 지켰던 관계로 명단에 들지 못했다는. GK 산티아고 카니자레스 “카니자레스 앞에서는 페널티킥을 차도 프리킥을 차는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위협적이었다. 뭔가 압도적인 에너지가 느껴는 골키퍼였다” CB 카를레스 푸욜 “타고난 수비수. 끈질기다. 포기하지 않는다. 즐기면서 수비하는 게 이런 거구나 싶다. 정말 잘했다. 푸욜은 잘 때도 수비할 것 같다. 상대하기 싫은 스타일이다” CB 이반 코르도바  “지금 생각해도 무섭다. 키가 작은데 빠르고 힘이 좋다. 점프력도 좋아서 제공권에서도 크게 밀린다는 생각이 안 든다. 지금까지 내가 상대했던 수비수 중에 가장 뛰어났다”  LB 지오반니 판 브롱크호스트  “왼쪽 풀백 자리에서 공을 가장 잘 찼던 선수로 기억한다. 공격수처럼 공을 찼던 수비수다. 함께 뛰면 편안함을 주는 선수다. 상대하면 당연히 힘들겠지. 그리고 일단 나에 대한 칭찬을 많이 해줬다” RB 미첼 살가도  “열심히 뛰던 선수다. 화려한 맛은 없지만 안정적이고 실수가 적었다. 포지션상 나와 맞대결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쉽게 상대하기 어려웠다” CM 지네딘 지단  “세계가 인정하는 주장이다. 카리스마가 대단하다. 누구도 지단에게 대들 수 없다. 경기에 미치는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크다. 홀로 21명을 지배한다. 그렇게 경기를 혼자 컨트롤하는 선수를 본 적이 없다” CM 클로드 마케렐레  “세계 최고의 스테미나 플레이어라고 하면 어떨까? 정말 많이 뛴다. 미친 듯이 뛴다. 저기 있었는데 갑자기 내 앞에 와 있다. 마케렐레 같은 수비형 미드필더가 있으면 수비는 무조건 안정적일 거다” LM 루이스 피구  “피구는 못 하는 게 없다. 빠르고 돌파도 잘한다. 개인기가 좋은데 패싱력도 있어 팀플레이에 능숙하다. 슈팅력도 뛰어나다. 전체적인 능력치가 월드클래스였던 선수다” RM 데이비드 베컴  “이렇게 프리킥을 아름답게 잘 차는 선수는 본 적이 없다. 베컴에게 프리킥으로만 많은 골을 허용했던 기억이 난다. 킥 하나만 완벽하게 해도 레알에 갈 수 있다는 걸 베컴이 보여줬다” FW 호나우두  “내가 지금까지 본 선수 중 최고의 스트라이커다. 흠잡을 데가 없다. 몸 한 번 흔들면 수비가 속는다. 특별한 움직임을 가졌던 선수다. 따라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FW 호나우지뉴  “막말로 ‘미친X’이다. 축구 역사 최고의 테크니션이라는 말도 아깝지 않다. 뭔가 대단히 역동적인 건 아니었는데 화려했다. 공이 발에 늘 붙어 있었다. 축구화에 자석을 넣은 것 같은 느낌이랄까” 교체선수 1. 박지성  “혹자는 내가 지성이 형보다 축구를 잘했다고 하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2. 고종수  “사람들은 나와 종수 형을 비슷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공을 정말 잘 찼다는 거” 3. 이천수  “내 이름이 빠지면 좀 서운할 것 같다. 그래도 한국인 최초로 스페인에 진출했으니 자격이 있지 않을까?” 감독 김정남 “국내외, 대표팀에서 많은 감독들과 함께했다.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다. 그 중에서도 김정남 감독님과 함께하면서 가장 마음 편히 축구를 했다. 내가 기량을 발휘하도록 많이 배려해주셨다. 전술적인 면, 용병술 등도 뛰어난 지도자셨다” 글=정다워, 그래픽=임진성, 사진=FAphotos, Gettyimages/이매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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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Andy Mitten] 유로2016 최고 히트상품은 아이슬란드였다. 창백한 피부의 1만 팬들이 연출하는 ‘바이킹 클랩’은 전 세계 축구 경기장으로 퍼질 조짐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미 아이슬란드와 친숙했다. 에이두르 구드욘센(37, 몰데) 덕분이다. 인구 33만 국가에서 UEFA챔피언스리그 우승자를 배출하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아버지와 교체되어 A매치에 데뷔했고, 유로 8강전에서 마지막 A매치를 치른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올해 37세인 구드욘센은 여전히 현역으로 뛴다. 바르셀로나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구드욘센과 만났다. 이곳은 티에리 앙리가 아주 좋아했던 레스토랑이다. 구드욘센은 의자에 앉아 <포포투> 독자들의 질문에 직접 대답했다. (편집자 주: 본 기사는 <포포투> 한국판 3월호에 게재된 내용 중 일부입니다) ### 아이슬란드 국가대표였던 아르노르 구드욘센의 아들이다. 환경이 기회를 줬다고 생각하는가? (Tom Collins, 글로체스터)내가 축구 선수의 아들이라서 축구 선수의 길을 밟은 건 아니다. 하지만 축구는 내 유전자나 다름없다. 핏속에 축구가 들어있다. 내가 축구공을 처음 봤을 때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세 살 때였던 것 같다. 그때 프로축구선수가 될 거라고 결심했다. 17세 때 PSV에인트호벤에서 호나우두(브라질)와 함께 뛰었다. 그에게서 배운 게 있었다면? (Andre Dutra, 트위터)‘정말 스페셜한 선수와 함께 뛰는구나’라는 생각이 바로 딱 들더라. 당시 그는 열아홉 살이었다. 나보다 두 살 위였지만 호나우두는 이미 성인이었다. 호나우두는 최고 스피드에서 헛다리를 짚고 트위스트와 턴을 구사했다. 평범한 선수들, 어느 정도 한다는 선수들도 그런 기술을 구사하면 속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말 멈출 수가 없는 선수였다. '따라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할 차원이 아니었다. 함께 뛰어본 최고의 스트라이커는? (Kingiesta, 트위터)정말 좋은 선수들과 함께 호흡을 맞췄다. 지미 플로이드 하셀바잉크, 지안프란코 졸라, 디디에 드로그바, 에르난 크레스포, 사무엘 에투, 리오넬 메시, 호나우지뉴 그리고 호나우두. 티에리 앙리도 있다. 혹시나 언급하지 않은 선수가 있다면 미리 사과한다. 함께 뛰면서 가장 좋은 호흡을 보였고 즐거웠던 선수는 바로 지미 플로이드 하셀바잉크였다. 우리는 스타일이 달랐지만 정말 손발이 척척 맞았다. 당신 아버지(안더레흐트)가 1984년 토트넘과 UEFA컵 결승전에서 승부차기 실축을 했다. 그로부터 26년 후에 아들인 당신은 토트넘에 입단했다. (Richie French 에섹스)그 때는 너무 어려서 몰랐다. 나중에 동영상을 보고 알았다. 다른 선수들도 실축했지만, 아버지가 마지막 키커였다는 게 문제였다. 사람들은 마지막 키커만 기억한다. 토트넘 입단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아버지는 정말 좋은 선수였다. 각 팀당 외국인 선수는 딱 세 명만 보유할 수 있는 시기였다. 그만큼 해외 진출이 어려웠다. 20년 동안 프로로 뛰었고, 벨기에에서는 득점왕, MVP도 하셨다. 34세에는 스웨덴 최고 외국인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PSV에인트호벤에서 다쳤다. 그때 선수 생활이 끝날까 봐서 걱정을 많이 했을 거 같다. (Mohamed 트위터)사실 의사가 ‘더 프로 생활을 할 수 없을지 모른다'라고 했을 때 겁이 났다. 뛸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실하지 않은 2년이었다. 그저 시간이 필요했다. 발목이 부러졌고, 뼈 성장 장애 합병증도 있었다. 수술을 총 일곱 번 했다. 1996년 4월 에스토니아에서 열린 A매치 데뷔전 생각나는가? 선발로 뛰었던 아버지와 교체 투입됐다. 그때 기분이 어땠는가? (Darren Finkle 페이스북)아버지와 같은 경기에서 뛰었다는 것 자체가 정말 대단했다. 교체 투입될 때, 아버지가 내 볼에 키스해줬다. 절대로 잊지 못한 순간이었다. 아버지가 나보다 더 초조해 보였다. 6주 후에 홈에서 A매치가 있었다. 아버지는 우리가 함께 선발출전하기를 원했지만 내가 다치고 말았다. 아버지는 내가 다치고 난 뒤에 2년이나 더 선수 생활을 했다. 우리는 몇 년은 함께 뛸 수 있었는데 아쉽다. 2004년 조제 모리뉴 감독이 처음 왔을 때 다들 당신을 내보낼 거로 예상했는데, 결국 당신은 첼시의 우승에 크게 공헌했다. 처음 그와 만났을 때 무슨 이야기를 하든가? (Adrian Evans 왓퍼드)모리뉴가 오고 나서 하루인가 지난 때였다. 피터 케니언 단장이 내게 전화를 걸어 “새 감독이 면담하고 싶어 해”라고 했다. 조제가 내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너의 새 감독이다. 내가 왔다고 해서 팀을 떠나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네가 여기서 최선을 다해주기를 원한다. 시즌 개막까지 몸을 잘 만들어 달라”라고 했다. 그게 전부였다. 2000년 처음 첼시에 왔을 때와 2006년 떠났을 때, 차이점은 무엇이었는가? (Pat Whittle, 이메일)선수단 수준은 큰 차이가 없다.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은 정말 사랑스러운 성격이자 좋은 지도자다. 모리뉴 감독은 선수들을 능숙하게 다뤘다. 가장 핵심은 선수단의 나이였다. 어느 정도 경험을 가진 선수들도 있었다. 처음 첼시에 왔을 때 지안루카 비알리 감독 아래였는데 경험 많은 선수들이 많았다. 바르셀로나에 가려고 레알 마드리드의 제안을 무시했다고 들었는데? (Alan Fitch 스투르포트)가장 먼저 내게 관심을 가진 스페인 클럽이 바로 레알 마드리드였다. 하지만 레알은 회장 선거 중이었고 감독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관심이 의심스러웠다. 스페인에서는 어떻게 일처리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바르셀로나는 달랐다. UEFA챔피언스리그에서도 우승을 막 했던 때다. 그때 결심했다. "그래 이 팀으로 가자. 바르셀로나는 1년 내내 내게 제안해왔잖아. UEFA챔피언스리그에서 우리가 그들을 탈락시켰을 때부터 말이야.” 헨리크 라르손의 대체자로 바르셀로나에 왔다. 그런 큰 기대감이 어떤 식으로든 부담으로 작용하지는 않았는가? (Tomas Hedberf 페이스북)사실 처음에는 누군가를 대체한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바르셀로나로 온 뒤 내가 라르손처럼 북유럽 출신인 데다가 같은 등번호를 받았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나는 벤치보다는 경기에서 승리하는 골을 넣고 싶었다. 바르셀로나에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해보니 라르손도 그렇게 얘기했다고 했다. 그게 바로 바르셀로나 사람들이 라르손을 기억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큰 부담은 없었다. 사실 바르셀로나는 입단 자체가 큰 부담이었다. 조제 모리뉴와 펩 과르디올라를 모두 경험했다. 두 감독의 유사점과 차이점은 무엇인가? (Geraint Matthews 트위터)꼼꼼한 일 처리가 닮았다. 축구적 관점에서 보면 조제는 더 수비적이다. 그렇다고 수비적인 마인드는 아니다. 상대 분석이 더 수비적이라는 뜻이다. 과르디올라는 팀플레이에 꽂혀 있다. 성격은 완전히 다르다. 과르디올라는 신중하다. 대립을 싫어한다. 모리뉴는 좀 더 공격적이다. ‘네가 원한다면 와서 재주껏 가져가라’는 식이다. 대립이나 논란도 즐기는 것 같다. 과르디올라는 그런 대화 자체를 피한다. 프랭크 램퍼드, 리오넬 메시, 가레스 베일과 함께 뛰었다. 그들이 이런 경지에 오를 줄 알고 있었는가? (Kai Jones 카디프)해리 케인. 내 생각보다 정말 더 크게 성장했다. 예전 1군에서 함께 훈련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저 친구는 잘 모르겠어”라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도 잘 몰랐다. 램퍼드도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좋은 선수가 되었다. 첼시가 처음 그를 영입할 때 ‘좋은 선수이기는 하지만 1,100만 파운드짜리는 아니야’라고 생각했다. 램퍼드는 매 시즌 성장했다. 경기에 임하는 태도도 특별했다. 메시에 관해서는 그 누구도 실력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았다. 아주 어렸을 때는 의심하는 사람이 있긴 했다. 왜냐하면 말수가 너무 적었다. 중국에는 왜 갔는가? 현역 생활을 더 연장하고 싶어서? (Jamie Lay 서튼)시즌이 끝나고 볼턴과 계약하고 싶었지만 조건이 맞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중국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솔직하게 이야기해보자. 중국에 가면 큰돈을 벌 수 있다. 물론 축구를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크기는 했다. 지난 시즌 중국에서 14경기에 출전했는데, 매 경기 만원이다. 분위기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뜨겁다. 사실 내게 맞는 팀은 아니긴 했다. 레프트윙으로도 뛰어야 했으니까. 공수를 오가고 있으면 가끔 ‘내가 이러기엔 너무 늙었잖아!’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버지처럼 당신도 아들과 아이슬란드 대표팀에서 함께 뛸 기회가 올까? (Robert Stead 레스터)그럴 수는 없을 거다. 유로2016 후에 나는 아이슬란드 대표팀에서 은퇴할 생각이다. 나는 여전히 축구를 사랑한다. 매일 훈련하고 싶다. 서른세 살 때 다리가 두 번이나 부러졌다. 사람들은 '이제 복귀하지 못할 거야'라고 했다. 하지만 내 마음이 “경력을 이런 식으로 마무리하지 않아”라고 말했다. 그 이후로 4년이나 뛰고 있다. 라이언 긱스만큼 오래 하지는 못하겠지만, 이제 2년 남았다. #팩트 파일-본명: 에이두르 스마리 구드욘센-생년월일: 1978년 9월 15일-출생지: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클럽(리그 기준): 1994년 발루르 17경기(7골); 1995-97 PSV 15경기(3골); 1998 KR 레이캬비크 6경기; 1998-2000 볼턴 원더러스 73경기(26골); 2000-06 첼시 261경기(78골); 2006-09 바르셀로나 112경기(18골); 2009-10 모나코 11경기; 2010 토트넘 홋스퍼(임대) 14경기(2골); 2010-11 스토크시티 5경기; 2011-12 AEK 아테네 14경기(1골); 2012-13 체르츨 브뤼헤 14경기(7골); 2013-14 클럽 브뤼헤 49경기(7골); 2014-15 볼턴 24경기(5골); 2015 스좌장 14경기(1골); 2016~ 몰데 11경기(2골)-국가대표팀: 1996~2016, 아이슬란드 88경기 26골-우승경력: KNVB컵 1995-96; 에레디비지에 1996-97; 프리미어리그 2004-05, 2005-06리그컵 2004-05; 라리가 2008-09; 코파델레이 2008-09; UEFA챔피언스리그 2008-09; UEFA 슈퍼컵 2009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포포투
[포포투=정다워(광주)] 광주FC는 K리그 클래식에서 전술적인 색깔이 가장 뚜렷한 팀 중 하나다. 선수 구성이 화려하지 않지만, 공격적인 스타일 하나만큼은 어떤 팀보다 확실하다. 결과가 우선시되는 최근 흐름과 반대로 내용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독특하다.  그 중심에는 남기일(42) 감독이 있다. 2013년 감독대행으로 광주 사령탑에 오른 그는 2014년 겨울 승격이라는 큰 성과를 냈다. 강등 후보로 지목됐던 작년에는 생존에 성공했고, 평가가 달라지지 않았던 올해에도 팀을 중위권(18라운드 현재 6승 5무 7패 승점 23점 8위)으로 이끌며 지도력을 입증하고 있다.  남 감독은 ‘과정주의자’다. 오늘보다 내일, 내일보다 다음 날 더 나은 축구를 하는 게 그의 꿈이다. 팀뿐 아니라 선수 개인도 꾸준히 성장해야 한다는 게 남 감독의 지론이다. 약팀이 선호하는 수비 축구가 아니라 전진하고 압박하는 공격 축구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다.  #1. ‘과정주의자’ 남기일의 광주 Q. 올해에도 변함없이 개막 전 강등 후보로 꼽혔지만, 중위권에 선전하고 있다. 예상했던 성적인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즌 초반엔 사람들이 강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금은 상위 스플릿 진출 가능성에 대해 말한다. 1월 동계훈련을 시작할 때 팀에 선수가 13명 정도밖에 없었다. 막막했는데 그래도 두 달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훈련을 잘했다. 가능성 있는 어린 선수들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내용과 결과까지 얻고 있다.  Q. 평소 과정, 경기 내용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올 시즌에도 잘 되고 있는 것 같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경기력이다. 과정이 좋아야 좋은 팀을 만들 수 있다. 나는 선수 성장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선수들에게도 그런 인식을 심어준다. 지금까지는 선수들이 잘 따라주고 있다. 시즌은 길다. 한 두 경기에 의해 우리 운명이 결정되는 게 아니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좋은 축구를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다. 어린 선수들 많아서 기복이 있고 힘들지만 그걸 잡아주는 게 감독의 역할이다. 축구 팬들에게 광주 축구는 색깔이 있고 볼 만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작년에는 15명 정도만 전술을 이해하고 뛰었다. 올해엔 20명 정도가 그렇다. 뛸 선수가 많아진 게 긍정적이다.  Q. 어린 선수들을 성장시키는 노하우가 있나?  글쎄, 노하우는 잘 모르겠다. 어린 선수들은 키우는 재미가 있다. 오늘 다르고 내일이 다르다. 늘 새로워서 흥미롭게 보게 된다. 이게 됐다 싶으면 다른 문제가 보인다. 이런 패턴의 반복이다. 짜릿할 때가 많다. 훈련에서 지시한 것들이 경기 중에 나오면 보람을 느낀다. 솔직히 말하면 신인이 프로 무대에서 제 몫을 하는 건 어렵다. 그래도 길게 봐야 한다. 특히 우리 팀 같은 경우에는 내년을 또 봐야 한다. 어린 선수를 꾸준히 키워야 한다. 신인을 쓰는 걸 두려워하면 미래를 본다고 말하기 어렵다. 과감하게 판단하고 시작했는데 선수들이 잘 따라오고 있어 흡족하다.  #2. 가난하니까 도전한다 Q. 감독들도 다 욕심이 있지 않나. 어린 선수들의 성장과 별개로 만들어진 선수를 쓰고 싶다는 생각도 들 것 같다.  당연하다. 우리 팀 선수들, 코칭스태프, 버스 기사님을 포함한 연봉이 30억 원을 조금 넘는다. 이 정도 규모의 팀을 이끄는 게 쉽지는 않다. 나도 정조국 정도 수준의 선수 5-6명 정도만 있으면 정말 좋은 팀을 만들 자신이 있다. 만들어진 선수를 데려오면 색깔만 입히면 되니까. 하지만 현실을 생각해야 한다. 광주라는 팀의 방향은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Q. 가난한 팀의 비애라고 해야 할까? 비애는 아니고...힘들기는 해도 나는 우리 팀이 가난하기 때문에 고민해야 한다. 더 치열하고 심각하게 축구 생각을 한다. 지도자로서 발전하는 계기가 되는 것 아닌가. 가난이 내게 준 복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가난하니까 도전하게 되고, 방법을 찾는다. 뒤로 갈 데가 없다. 이런 팀에서 지도자를 하면 다른 팀 가면 웬만한 건 다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3. 정조국의 부활을 확신한 이유 Q. 정조국의 가세가 광주에게 큰 힘이 됐다. 부활을 예상했나? 솔직히 말하면 내가 조국이를 데려오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말리는 사람이 많았다. 몸이 망가진 것 같은데 왜 무리수를 두냐고 하더라. 그래도 내가 책임지겠다고 말하고 데려왔다. 데려오는 과정도 힘들었다. 이적료 협상 과정도 순조롭지 않았다. 포기할 뻔 했는데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 다행이다. 부활을 100% 확신했던 건 아니다. 수치로 따지만 51% 정도? (웃음) 조국이는 가진 게 있는 친구다. 간절함도 있었다. 조국이가 살면 우리가 살겠다는 확신을 해서 데려온 거다.  Q. 정조국이 골도 많이 넣었지만 팀 플레이에도 보탬이 되는 것 같다. 나는 조국이가 우리의 축구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볼 때 고마움을 느낀다. 우리 전술의 핵심은 압박이고 협력 수비다. 최전방 공격수도 전방에서 수비를 열심히 해야 하는 전술이다. 쉽지 않을 텐데 정말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수비를 한다. 그게 안 되면 우리 축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는데 조국이 때문에 잘 이루어지고 있다.  Q. 정조국의 가세가 팀에 어떤 영향을 미친 것 같나? 모든 면에서. 조국이는 연계 플레이가 좋다. 우리 축구는 동료들과의 호흡이 잘 맞아야 한다. 유기적으로 움직이면서 공을 받아주고 들어가고 해야 하는데 잘하고 있다. 밖에서 보면 조국이가 즐겁게 축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경기 중에 기회가 한 두 번은 무조건 오니까. 조국이처럼 이름 있는 선수가 중심을 잡아주면 팀은 견고해진다.  #4. 지도자 남기일, 이름값 아닌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다 Q. 2013년 감독대행이 된 후 비판도 있었지만, 꾸준히 인정받는 지도자로 성장한 것 같다. 어떤 리더십이 남기일과 광주를 성장시켰나? 내가 나이가 어리다고 형님 리더십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감독과 선수 사이에는 간격이 분명히 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승과 제자 사이니 선이 필요하다. 형, 동생 사이는 아니라고 본다. 나는 원칙을 지키는 선에서 선수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노력한다. 형님 리더십은 결정적인 순간에 먹히지 않을 수가 있다. 아직 젊은 편이라 더 냉정하게 하려고 하는 것도 있다.  Q. 현재 K리그 클래식엔 스타 출신 감독들이 즐비하다. 이러한 환경이 상대적으로 덜 유명했던 남기일에게도 영향을 미치나? 나도 그런 점은 인지하고 있다. 내 커리어가 좋은 선배들에 비해 부족하다. 그래서 얻는 장점 중 하나가 선수들에 대한 이해도다. 나는 대단한 스타가 아니었기 때문에 벤치에 앉거나 경기에 나가지 못하는 선수들의 마음을 잘 안다. 그들도 팀의 중요한 구성원이다. 경기에 나가는 11명만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런 선수들을 품어야 팀이 제대로 돌아간다. 나는 그런 선수들까지 뛸 수 있게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  Q. 어쨌든 모든 감독이 더 좋은 팀을 이끌기를 원하고 인정받고 싶어 한다. 감독 남기일의 욕구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렇다. 나는 더 좋은 팀에 가고 싶은 생각보다는 내 실력을 인정받고 싶다. 광주를 지금보다 더 무서운 팀으로 만들고 싶다. 실력으로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크다. 우리 팀은 개인으로 따지면 K리그에서 이길 팀이 많지 않다. 하지만 전술적으로 완성도를 높이고 뭉치면, 어느 팀을 만나도 해볼 수 있는 팀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걸 보여주고 싶다.  사진=FAphot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