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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4

[홍재민의 축구話] 유로를 읽지 말고 느껴주세요

[포포투=파리(프랑스)] 내용과 결과. 재미와 승리. 분석과 공감. 축구 안에서 인과관계이거나 아예 동떨어져 있거나 하는 것들이다. 이틀 전(22일) 툴루즈와 보르도를 거쳐 파리로 돌아왔다. 몽파르나스 기차역에서 곧바로 생드니에 있는 스타드 드 프랑스로 갔다. 아이슬란드와 오스트리아의 F조 3차전 현장이었다. 지하철이 찜통이다. 열린 창문으로 지하 냄새가 나는 바람이 들어왔다. 아이슬란드 팬들이 천정을 두들기며 응원 구호를 고래고래 외쳤다. 오스트리아 팬들은 빙긋이 웃으며 땀을 흘렸다. 경기 중 서울에 있는 동료와 문자를 주고받았다. 아이슬란드를 주제로 ‘한국 축구가 배워야 할 궁극점’이라며 서로 낄낄댔다. 전반 18분에 선제골을 넣었다. 롱스로인, 살짝 떨구고, 세컨드볼을 잡아 슛, 골인이다. 이 얼마나 간결한 득점 패턴인가? 메이저 대회에 나갈 때마다 ‘세트피스를 노려야 한다’라고 각오를 다지는 대한민국이 생각났다. 1-1 동점 상태로 후반 추가시간이 시작되었다. 아이슬란드 쪽은 난리가 났고, 오스트리아 쪽은 망연자실이다. 기사 작성을 마치려는 순간, 아이슬란드 팬들이 “우오오오~”라며 함성을 질렀다. 손을 멈추고 그라운드를 보니 땅볼 크로스가 들어갔다. 트라우스타슨이 미끄러지면서 뻗은 발에 맞은 공이 오스트리아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기사를 다 뜯어고쳐야 하는데, 멍하니 아이슬란드의 환희를 쳐다보기만 했다.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기쁠까? 얼마나 행복할까? 아이슬란드 축구의 새 역사가 만들어지는 순간을 직접 봤다. 유로2016 종료 후, 아이슬란드인을 만날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들과 교감할 최고의 이야깃거리가 생겼다. “저, 그때 스타드 드 프랑스에 있었어요.” 국내에서도 유로2016 관련 기사가 많다. 기사와 댓글 들은 ‘재미없다’라는 반응이다. 경기 수준이 낮아졌다는 불평이 많다. 사실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한껏 웅크려 버티면서 세트피스와 역습만 노리는 팀들이 전보다 많아졌다. 실력이 부족하면 그럴 수밖에 없다. K리그의 작은 팀, 월드컵의 한국이 그렇다. 유로 본선에 출전한 인구 33만 국가에 “왜 화끈하고 재미있는 공격 축구를 하라”고 요구할 수 없다. 축구를 즐기는 방법은 개인 취향의 영역이다. 정답이 없다. 축구를 분석하거나 읽으며 재미를 느끼는 팬도 많다. 그러나 국가대항전은 관찰보다 공감이 어울린다. 한 시즌 40~50경기를 치르는 클럽 축구에는 과학이 끼어들 틈이 있겠지만, 월드컵, 유로, 아시안컵에는 국가, 국기, 국적이 전부다.  영국 축구 계간지 ‘더블리자드’ 편집장 조나단 윌슨은 메이저 대회에서 수비에 치우치는 원인을 이렇게 설명했다. “클럽 축구에서는 한 경기 져도 바로 다음 주에 만회할 수 있다. 빅클럽 팬들도 10경기 중 7~8경기에서 좋은 경기력을 나오면 만족한다. 메이저 대회는 다르다. 훈련시간이 짧으니 수비만 맞추고 출전한다. 대패하면 그 기억이 영원히 지속된다.” 국가대항전이라는 목적어에 ‘읽다’가 아니라 ‘느끼다’라는 술어가 어울린다. 읽으면 따분하지만, 느끼고 공감하면 흥미진진해진다. 이곳에서 아이슬란드가 치른 셋 중 두 경기를 봤다. 그들이 경기에서 남긴 숫자는 지루했지만, 투지와 열정은 드라마 그 자체였다.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1만 명(전체 인구 3%)이 한 장소에서 기뻐서 날뛰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숙소로 가는 길에서 본 오스트리아 팬들의 실망감도 절절하게 다가왔다. 아이슬란드 대표팀에 “안티풋볼 좀 그만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오스트리아, 스웨덴, 터키 팬들에게 “패스 성공률과 슈팅 시도를 각각 15%씩 높여야 하겠더군”이라며 훈수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선수들은 국가를 대표해서 뛰고, 팬들은 같은 옷을 입고 그들을 응원한다. 국가가 그들을 하나로 묶는다.  유로2016 조별리그 10경기를 현장에서 봤다. 매 경기에 출전하는 대표팀과 팬들, 그들을 바라보는 프랑스 사람들은 모두 웃고 있었다. 즐거워 보였다. 경기가 있을 때마다 파리 에펠탑 팬존에는 많은 팬들이 모여 유로를 즐긴다. 맥주를 마시며 승패에 희비를 드러낸다. 유로를 가슴으로 느끼는 모습이 좋았다. 곧 유로2016의 16강 일정이 시작된다. 조별리그처럼 토너먼트도 따분하지 않을 거다. 느끼면 그렇다. 글=홍재민,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포포투

2016.02.26

[perfect.xi] 이천수가 상대한 라리가 올스타

[포포투] 지금은 무한도전 ‘못친소’에‘ 나와 입담을 과시하는 연예인으로 활동하지만, 이천수는 한국인 최초로 스페인프리메라리가에 진출한 이력의 축구 스타다. 스페인에서 뛰던 2003-05년이 그의 축구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선수들을 상대했던 시절이다. 이천수의 <PERFECT XI>이 라리가의 스타들로 가득한 이유다. 레알소시에다드 동료였던 사비 알론소는 이천수와 함께 벤치를 지켰던 관계로 명단에 들지 못했다는. GK 산티아고 카니자레스 “카니자레스 앞에서는 페널티킥을 차도 프리킥을 차는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위협적이었다. 뭔가 압도적인 에너지가 느껴는 골키퍼였다” CB 카를레스 푸욜 “타고난 수비수. 끈질기다. 포기하지 않는다. 즐기면서 수비하는 게 이런 거구나 싶다. 정말 잘했다. 푸욜은 잘 때도 수비할 것 같다. 상대하기 싫은 스타일이다” CB 이반 코르도바  “지금 생각해도 무섭다. 키가 작은데 빠르고 힘이 좋다. 점프력도 좋아서 제공권에서도 크게 밀린다는 생각이 안 든다. 지금까지 내가 상대했던 수비수 중에 가장 뛰어났다”  LB 지오반니 판 브롱크호스트  “왼쪽 풀백 자리에서 공을 가장 잘 찼던 선수로 기억한다. 공격수처럼 공을 찼던 수비수다. 함께 뛰면 편안함을 주는 선수다. 상대하면 당연히 힘들겠지. 그리고 일단 나에 대한 칭찬을 많이 해줬다” RB 미첼 살가도  “열심히 뛰던 선수다. 화려한 맛은 없지만 안정적이고 실수가 적었다. 포지션상 나와 맞대결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쉽게 상대하기 어려웠다” CM 지네딘 지단  “세계가 인정하는 주장이다. 카리스마가 대단하다. 누구도 지단에게 대들 수 없다. 경기에 미치는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크다. 홀로 21명을 지배한다. 그렇게 경기를 혼자 컨트롤하는 선수를 본 적이 없다” CM 클로드 마케렐레  “세계 최고의 스테미나 플레이어라고 하면 어떨까? 정말 많이 뛴다. 미친 듯이 뛴다. 저기 있었는데 갑자기 내 앞에 와 있다. 마케렐레 같은 수비형 미드필더가 있으면 수비는 무조건 안정적일 거다” LM 루이스 피구  “피구는 못 하는 게 없다. 빠르고 돌파도 잘한다. 개인기가 좋은데 패싱력도 있어 팀플레이에 능숙하다. 슈팅력도 뛰어나다. 전체적인 능력치가 월드클래스였던 선수다” RM 데이비드 베컴  “이렇게 프리킥을 아름답게 잘 차는 선수는 본 적이 없다. 베컴에게 프리킥으로만 많은 골을 허용했던 기억이 난다. 킥 하나만 완벽하게 해도 레알에 갈 수 있다는 걸 베컴이 보여줬다” FW 호나우두  “내가 지금까지 본 선수 중 최고의 스트라이커다. 흠잡을 데가 없다. 몸 한 번 흔들면 수비가 속는다. 특별한 움직임을 가졌던 선수다. 따라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FW 호나우지뉴  “막말로 ‘미친X’이다. 축구 역사 최고의 테크니션이라는 말도 아깝지 않다. 뭔가 대단히 역동적인 건 아니었는데 화려했다. 공이 발에 늘 붙어 있었다. 축구화에 자석을 넣은 것 같은 느낌이랄까” 교체선수 1. 박지성  “혹자는 내가 지성이 형보다 축구를 잘했다고 하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2. 고종수  “사람들은 나와 종수 형을 비슷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공을 정말 잘 찼다는 거” 3. 이천수  “내 이름이 빠지면 좀 서운할 것 같다. 그래도 한국인 최초로 스페인에 진출했으니 자격이 있지 않을까?” 감독 김정남 “국내외, 대표팀에서 많은 감독들과 함께했다.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다. 그 중에서도 김정남 감독님과 함께하면서 가장 마음 편히 축구를 했다. 내가 기량을 발휘하도록 많이 배려해주셨다. 전술적인 면, 용병술 등도 뛰어난 지도자셨다” 글=정다워, 그래픽=임진성, 사진=FAphotos, Gettyimages/이매진스

인기사커톡
[포포투] 오카자키 신지. 2015-16시즌 유럽 진출 일본인 선수 중 가장 주목받았던 주인공이다. 그러나 우리는 또 한 명의 ‘신지’를 안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플레이메이커 가가와 신지(27)다. 위대한 성공 약속처럼 보였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적이 백일몽으로 끝났다. 미련 없이 돌아온 친정에서 가가와는 다시 진가를 발휘하며 유럽 진출을 꿈꾸는 아시아 선수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월드 No.1 풋볼매거진 <포포투>가 카가와를 만났다. ### 442: 인터뷰에 응해줘서 고맙다. 2015-16시즌을 총평해달라. 일장일단이 있었다. 전체적으로 평온한 한 해였다. 지난 시즌과 비교하고 싶지는 않다. 당시 상황은 좋지 않았다. 어쨌든 우리는 올 시즌을 통해 다시 자신감을 얻었고, 좋은 결과도 냈다. 물론 2014-15시즌의 상처를 회복하기는 정말 힘들었다. 다행히 출발이 순조로웠다. 시즌 내내 좋은 모습을 보였다. 시작이 반이었다. 442: UEFA챔피언스리그(UCL)에 있다가 지난여름 UEFA유로파리그(UEL) 진출 플레이오프를 치렀다. 좀 실망스럽지 않았는가? 물론 UCL의 수준이 훨씬 놓다. 올해 우리는 새 감독을 맞이했고 새로운 경험을 했다. UEL도 플레이오프를 거쳐야 했다. 하지만 우리가 승리하면 할수록 팀 전체가 자신감을 많이 얻었다. 정말 긴 시즌이었다. 남들보다 일찍 시즌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는 좋은 분위기를 빨리 가질 수 있었다. 덕분에 시작이 순조로웠다. 442: 분데스리가 역대 2위 중 최다 승점(78)을 올렸다. 바이에른 뮌헨을 추격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는가? 그런(바이에른 추격) 데에 집중할 틈이 없었다. 그들을 잡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바이에른은 우리에게 일말의 기회도 주지 않았다. 그들과 승점 5점 차를 유지하며 시즌 대부분을 보냈다. 올 4월 샬케04와 2-2로 비기는 바람에 승점 차 유지가 어려워졌다. 그래도 바이에른은 빡빡한 UCL 일정이 있으니 우리에게 여전히 기회가 있다고 믿었다. 괜한(?) 기대였다. 그들은 승리해야 할 때 실수 없이 승리했다.  442: 다음 시즌에는 차이를 더 좁힐 수 있을까? 물론이다. 우리 팀 수준도 높여야 하고 시즌 내내 좋은 경기력을 유지해야 한다. 우리는 상대를 파악하고 경기에 임하려 노력한다. 감독(토마스 투헬)도 상대 전력에 따라 포메이션을 구상하고, 상황별로 전술을 변화한다. 442: 최고의 순간은? 특별한 게 없다.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나는 언제든지 훈련과 경기에 참여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돌이켜봤을 때 이게 가장 긍정적인 면이다. 442: 개인의 활약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출발이 좋았다. 전반기 플레이도 만족스럽다. 후반기에는 약간 흔들렸다. 팀 변화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다음 시즌에는 더 발전된 모습을 보이려 한다. 2~3월경, 나는 선발로 거의 출전하지 못했다. 이것조차 내게 중요한 경험이다. 시즌 내내 모든 게 완벽할 수는 없다. 선발로 출전하지 못하더라도 나 자신을 잘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늘 스스로 기량을 향상하려 노력해야 한다. 도르트문트처럼 강한 팀에서는 더 그렇다. 442: 토마스 투헬의 인상 깊은 점은? 정말 섬세하다. 매 경기 준비를 철저히 구상한다. 덕분에 우리는 그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선수들이 그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어려움이 없다.  442: 다음 시즌(2016-17) UCL로 복귀한다. 기대가 클 것 같은데? UCL 출전은 늘 행복하다. 우리가 그곳에서 얼마만큼 성취하는지 지켜보는 일도 재밌다. 이제 UCL 추첨 방식이 바뀐다. 정말 강한 팀과 만날 수도 있다. 어쨌든 환상적인 토너먼트가 될 것이다. 일단 잘 뛰고 싶다. UCL 출전은 정말 놀라운 경험이라 생각한다. 대회 주제곡을 들을 때마다 흥분된다. 빨리 유럽 무대로 나가서 뛰고 싶다. 442: UEL에서 리버풀에 패했다. 어려운 환경이었다. 경기 직후 팀 분위기는 어땠고, 위르겐 클롭과 대화를 나눴는지? 2차전 초반을 제외하곤 정말 어려웠다.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힘들었다. 결과도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우리는 다음 경기들에 집중해야 했다. 우리에겐 또 다른 중요한 경기들이 있었으니까. 내가 클롭과 대화를 나눴냐고? 길게 대화하진 않았다. 인사 정도만 나눴다. 442: 그가 당신을 리버풀로 데려갈까? 생각해본 적 없다! (웃음) 442: 잉글랜드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나?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난 그저 도르트문트에 집중할 뿐이다. 44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시절의 기억은? 내가 너무 어렸다. 24~25세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그곳에서 많은 경험을 했고 성장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아무런 걱정도 없었다. 단지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다. 맨유에도 좋은 선수들이 있지만 생각은 각기 다르다. 도르트문트 코치는 도르트문트를 위해 생각한다. 맨유의 코치는 맨유를 위한 사람이다. 나는 단지 각자가 원하는 방향에 적응해야 할 뿐이다. 442: (다른 선수들과) 다르게 행동한 점이 있다면? 매일 더 고군분투했다. 나처럼 작은 선수가 맨유에서 뛰려면 매일 투쟁해야 한다. 도르트문트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늘 어떻게 하면 발전할지를 생각하고 노력했다. 물론 정신적으로도 성숙해져야 했다. 442: 경기장 밖에선 무엇을 하는가? 일본이 그립지는 않은가? 시즌 중에는 일본이 그립다는 생각은 없다. 프리시즌에 일본으로 가면 남다른 기분이다. 환영도 받고, 호텔과 음식도 훌륭하다. 시즌 중에는 느낄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럴 때면 일본이 얼마나 멋진 나라인지 깨닫는다. 친구와 가족을 만나면서 재충전한다. 442: 도르트문트에서 누구랑 가장 친한가? 일카이 귄도간과 박주호다. 딱히 특별한 걸 하는 건 아니지만 우린 늘 훈련장에서 수다를 떤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많은 대화를 나눈다. 442: 지금 아시아 축구에 관한 느낌은 어떤가? 아시아 팀은 세계적인 무대에서 뛸 기회가 별로 없다. 한 해에 많아야 딱 한 번 유럽 강팀을 상대하는 정도다. A매치 기회가 더 많으면 발전할 수 있다. 아시아 축구 수준도 높아지게 된다. 유럽에는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 선수들도 있다. 그들이 유럽 최고의 팀에서 뛸 수 있는 기반이 될 거다.  442: 지난 5년간 어느 국가가 가장 많이 발전했나? 태국과 중동 쪽이 강해졌다. 수준도 높아졌다. 다른 작은 국가들도 성장 중이다. 일본과 한국이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다른 나라들은 우리를 잘 따라서 유럽 리그에서 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에디트=정재은, 인터뷰=Yoshiko Riyokai, 사진=포포투DB, Gettyimages/이매진스
[포포투=홍콩] 40년 넘게 밟지 못한 대회. 홍콩에 아시안컵은 ‘꿈의 무대’다.  김판곤(47) 홍콩 축구대표팀 감독은 ‘홍콩의 히딩크’다. 만년 약체였던 홍콩을 만만치 않은 팀으로 변모시켰다. 지난 3월 끝난 러시아월드컵 3차 예선을 C조 3위(4승 2무 2패)로 마감했다. 크게 앞선다는 중국과 홈과 원정에서 모두 비겼다는 성과를 남겼다. 목표 달성에 실패한 김 감독은 새로운 꿈을 꾼다. 바로 2019년 UAE에서 열리는 아시안컵 본선 진출이다. 아시안컵은 홍콩이 간절하게 염원하는 무대다. 홍콩은 1968년 이후 이 대회와 인연이 없다. 12회 연속 예선에서 탈락했다. 월드컵 2차 예선에서 중국, 카타르 등과도 대등하게 싸우는 전력을 갖췄으니 이번에야말로 아시안컵에 도전할 기회다. #월드컵 최종예선 실패, 그 후 김 감독은 “최종예선에 못 가는 건 아쉽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 후회는 없다”라고 말했다. 승점 14점을 얻은 성적도 충분히 박수 받을 만하다는 생각에서다. 홍콩이 월드컵 예선에서 4승을 올린 건 멕시코월드컵을 앞둔 1985년 이후 29년 만의 일이다. 7대회 연속 승점 7점 이하에 그치며 본선행에 실패했다. 상황이 달라졌다. 끈끈함과 승부욕이 홍콩을 만만치 않은 팀으로 변모시켰다. 중국을 상대로 패하지 않은 점도 김 감독의 위상에 보탬이 됐다. 김 감독은 “카타르를 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중국을 상대로 보여준 선전이 시민들에게 감동을 준 것 같다”며 웃었다. 중국전 무패라는 성과는 홍콩과 중국 모두에 큰 파장을 남겼다. 지금까지 중국슈퍼리그에서 뛰는 홍콩 선수들은 외국인 선수로 분류되지 않았다. 로컬 플레이어로 인정받는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지난 A매치 결과로 인해 뿔이 난 중국축구협회가 홍콩 선수들을 외국인으로 규정하려고 한다. 홍콩 선수들에게는 발등에 불이 날 상황인데, 한편으로는 두 번의 무승부가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게 만든다. 김 감독은 “중국이 충격이 크긴 큰 것 같다. 물론 홍콩에서는 큰 성과로 보고 있기는 하다”라고 설명했다. 예선이 끝난 후에도 김 감독은 숨 돌릴 틈 없이 바빴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하는 기술위원 교육에 참석해 공부했다. 그는 “감독 일만 하는 것도 바쁜데 기술위원까지 해야 한다. 처음에는 뭐 하는 일인지 잘 몰랐다. 이번 교육을 통해 많이 배웠다. 공부를 계속해야 하는 게 힘이 들기는 하다.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노력하고 싶다”라고 밝혔다.  최근 그는 K리그 클래식 팀으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다. 한 에이전트가 이적 의사를 물어왔다. 그는 단칼에 거절했다. 홍콩 축구에 대한 사명감 때문이다. 김 감독은 “팀 이름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는데 국내로 들어올 수 있냐고 묻더라. 팀 이름은 물어보지도 않았다. 갈 생각이 없어 그냥 큰 고민 없이 갈 수 없다고 답했다”며 “지금 나는 홍콩에 집중해야 한다. 이렇게 만들어놓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내가 무슨 욕을 먹겠나. (웃음) 끝까지 해보고 싶다. 홍콩을 위해 죽겠다(Die for Hongkong)고 했으니 내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번이 적기, 아시안컵 ‘올인’ 월드컵 최종예선 진출에 실패한 홍콩의 다음 목표는 2019년 아시안컵 본선 무대다. 1968년 이후 단 한 번도 가지 못한 대회다. 월드컵 2차 예선에서 예상 밖의 선전을 한 만큼 다음 아시안컵에는 반드시 가야 한다는 게 김 감독의 생각이다. “이제 모든 게 아시안컵 위주로 돌아간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선수 구성에도 변화를 줄 것이다. 목표 달성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김 감독은 아시안컵 진출에 자신의 자리를 걸었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감독직에서 물러나겠다는 각오다. 그는 “아시안컵 본선에 못 가면 홍콩 감독을 그만둘 것이다.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목표니 실패할 경우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다”라고 말했다.  홍콩에서 김 감독의 입지는 안정적이다. 전에 없던 탄탄한 팀을 만들어놨으니 여론이 김 감독에게 우호적인 것은 당연하다. 아시안컵 본선에 못 간다 해도 사퇴 압박이 들어올 가능성은 크지 않다. 게다가 그는 홍콩 생활에 크게 만족하고 있다. 홍콩의 문화, 관습, 음식 등 모든 것에 적응했다. 손에 쥔 모든 걸 한 번에 놓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는 “본선에 못 가면 많이 불편해질 것 같다. 나 스스로 책임감을 느끼며 힘들어하는 것보다는 그만두는 게 낫다. 물론 그만두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홍콩을 본선에 올려놓고 싶다”라고 말했다.   #홍콩 축구에 메스를 든 김판곤 이제 김 감독의 시계는 2019년 아시안컵이 열리는 UAE에 맞춰 있다. 김 감독이 본선 진출을 위해 선택한 카드는 세대 교체다. 그는 A매치 출전 경험이 풍부하고, 김 감독과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춘 30대 초중반 선수들 대신 21세, 23세 이하 대표팀에서 활약하는 재능 있는 유망주들을 대표팀에 부를 예정이다.  실제로 그는 지난 3일 미얀마에서 열린 친선대회에 유망주들을 대거 호출했다. A매치 경험이 10경기 이상인 선수는 단 2명뿐이었다. 김 감독은 “오래 함께한 친구들과는 정이 많이 들었다. 나와 선수로 함께 뛴 이들도 있다. 그래도 세대 교체는 미래를 위한 선택이다. 아시안컵, 나아가서는 다음 월드컵 예선까지 내다보는 계획이 필요하다. 시간을 두고 지켜본 어린 선수들이 많다. 잘 만들면 팀에 큰 도움이 될 만한 재능들이다. 지금이 아니면 어렵기 때문에 아시안컵 예선부터는 이 친구들을 활용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홍콩은 귀화 선수 영입에도 적극적이다. 워낙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나라라 국민 정서도 귀화 선수에 거부감이 없다는 게 김 감독의 설명이다. “처음에는 걱정했다. 귀화 선수가 많이 생기면 홍콩 선수들이 설 자리도 줄어든다. 그래서 우려했는데 생각보다 거부감이 없었다. 오히려 내가 더 걱정할 정도다. 일단 국제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게 이 쪽 사람들의 생각이다.”  김 감독의 홍콩은 몇 년에 걸쳐 궤도에 올라온 팀이다. 탑을 쌓는 건 힘들지만, 탑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세대 교체가 진행되고 다양한 선수들이 대표팀을 오가는 동안에는 팀 전력이 불안정할 확률이 높다. 김 감독 입장에선 성적에 대한 부담을 느낄 만하다. 하지만 그는 “일단 예선이 시작되는 내년 3월까지 이 선수들을 중심으로 조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그 전까지는 결과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협회와도, 이 쪽 언론들과도 세대 교체에 공감하고 교감했다. 이제 뜻이 맞으니 달려갈 일만 남았다”며 하나의 팀을 만드는 데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글=정다워, 사진=포포투, Gettyimages/이매진스